새누리당이 집단 무기력증에 빠진 듯하다.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가 20일도 남지 않았지만 대표 출마자가 나타나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다수 중진은 뒤로 숨은 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눈치만 살핀다고 한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 경선 문제를 놓고 시끌벅적한 민주통합당과는 대조적이다. 박 위원장이 25일 새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당내 잡음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 이후 이런 분위기가 두드러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박 위원장 주도 아래 4·11총선에서 승리한 뒤 명실상부한 ‘박근혜당’으로 탈바꿈했다. 비박(非朴) 진영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흐름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많다. 박 위원장은 지도부 선출과 관련해 ‘박심(朴心)은 없다’는 뉘앙스로 당당한 승부를 주문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이 박심에 기대지 않으면 당 지도부조차 제대로 구성할 수 없는 상황임이 드러났다.
박 위원장의 1인 체제가 확고해질수록 친박 중진들의 충성 경쟁과 상호 견제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핵심 측근이라도 눈 밖에 날까 쓴소리를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가 당면 목표이고, 박 위원장의 우월적 지위가 강하다 해도 명색이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과 유력 정치인들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이런 행태는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박 위원장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에게 ‘박근혜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당의 역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야권은 총선 패배 이후 내홍을 겪으면서도 전열 정비에 한창이다. 민주당에선 문재인 상임고문과 김두관 경남지사, 손학규 전 대표 등이 대선후보 경선을 벼르고 있다. 민주당의 1차 레이스가 끝나면 장외(場外)에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2차 단일화 시도도 예상된다. 이런 ‘정치 흥행’이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도 비슷한 바람몰이를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밀어내곤 했다. 10년 전 하늘을 찌를 듯했던 이회창 대세론이 ‘노무현 신풍(新風)’에 패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면서도 변화와 쇄신의 주도권을 쥐어야 최종 승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새누리당이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안이한 인식으로 대세론에 안주한다면 박근혜 피로감은 더 커질 것이다. 민심과 당심(黨心)의 괴리가 좁혀지지 않으면 박근혜 대세론은 언제든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