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광영]동물의 행복추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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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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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서 자란 동물을 야생으로 보내는 것은 현대인을 18세기 오지에 내버려두고 ‘어떻게 하나 보자’는 것과 같다.” 미국 철학자 브라이언 노턴은 환경론자들의 야생 방사 프로젝트를 이렇게 비판했다. 1992년 미국에선 멸종 위기에 처한 콘도르 독수리 219마리를 방사한 적이 있다. 살아남은 건 고작 한 마리였다. 서울시가 최근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제돌이’를 바다에 놓아주기로 했다. 자유의 대가로 생존의 기로에 놓일 제돌이가 반길지 의문이지만, 화두가 하나 생겼다. 전시된 동물들의 행복추구권.

▷고대 황제들은 권력 과시용으로 동물을 수집했다. 로마제국의 트라야누스 황제는 호랑이와 코끼리 등 1만1000마리를 소장했으나 다키아 정벌을 기념해 123일 동안 사냥경기를 열며 모두 도륙했다. 동물원이 ‘오락과 교육 목적으로 동물을 전시하는 곳’이란 정의를 갖게 된 19세기 이후에도 동물은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였다. 당시 유럽 열강들은 동물원을 통해 식민지 지배력을 과시했다. 희귀 동물은 먼 이국땅을 정복했다는 상징이었다. 1870년대 독일의 하겐베크 동물원은 관람객이 줄자 수단과 스리랑카 사람들을 잡아와 전시하기도 했다.

▷흔히 동물원이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들 하지만 증명된 적은 없다. 오히려 미국 예일대 스티븐 켈러트 박사는 동물원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거미 나방 같은 곤충을 박멸하려 하는 등 일반인과 같은 편견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동물원이 멸종위기종을 보존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근친교배가 많아 일부 종은 폐사율이 야생보다 6, 7배 높다. 사람 손에서 큰 희귀종은 자연 상태의 특징이 희미해져 애초에 보존하려 했던 동물과 같은 종인지도 의문시된다.

▷인기를 끌었던 하겐베크 동물원의 ‘사람 쇼’는 전시된 이국인들이 관람객들과 동료 인간으로서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막을 내렸다. 동물원의 전시물은 철저히 대상화될 때만 관람객과 안정적인 관계가 가능하다. 지난해 서울대공원에서 탈출했다가 붙잡힌 귀염둥이 말레이곰 ‘꼬마’도 울타리를 넘어서자 마취총으로 기절시켜야 할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동물원에 간 어린이들은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왜 동물들이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어요?” 동물들의 초점 없는 눈동자를 보며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동물#행복추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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