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미석]5월에 ‘형제의 날’은 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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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4일 03시 00분


고미석 전문기자
고미석 전문기자
치솟는 기온에 따가운 햇살. 봄을 건너뛴 속성 날씨와 더불어 연중 챙겨야 할 기념일이 가장 빼곡한 오월의 문이 활짝 열렸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오월 자체가 아예 ‘가정의 달’로 지정돼 있다. 첫날에 자리 잡은 근로자의 날은 바깥일 하는 사람들에게 한 달 동안 고루 펼쳐질 집안일의 대사를 앞두고 호흡 조절 기회를 준 것인가 싶을 정도다.

일생 동안 고락 함께할 ‘동지’

가족을 돌아보는 온갖 날이 달력 한 장에 다 들어 있는데 ‘형제의 날’은 왜 없을까. 괜한 궁금증이 생겼다. 정말 우애를 다져야 할 사람들은 형제들 아닌가? 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부터, 형제들을 베고 왕이 된 조선의 태종과 그의 후예들,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드러나는 그 형제들의 비리, 최근 공천과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진 형제자매의 대립…. 다채로운 애증사야말로 동서고금의 해묵은 인간 숙제 아니던가. 그래서 하루 날 잡아서라도 우애를 다질 필요가 있는 것이 형제지간 아닌가 말이다.

다툴 권력과 재물이 없는 평범한 집안이라 해서 반드시 화목 원만한 형제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니다. 한 집에서 서로 부대끼면서 사랑과 경쟁의 미묘한 줄타기를 거치며 성장한 아들딸이 커서도 누적된 사소한 문제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편하게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어딘가로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한 일본 배우 기타노 다케시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싶기도 하다.

‘가파른 암벽 길 오르다 보니 아연/갈 길도 오던 길도 간 곳이 없다/금세 굴러 내릴 듯 바윗돌 총총/가로막혀 숨차고 몸이 후들거린다/가야 할 길보다 걸어온 길이 멀어/그만 돌아갈 수도 없는 외통길이다/이젠 한 마리 짐승처럼 네 발로/아찔한 암벽을 기어오른다, 문득/등에 진 배낭이 성가시고 무겁다/미련 없이 당장 버리고 싶다, 허나/오르막길 등짐은 정분이 난 악처다/돌부리에 걸려 몸이 휘청할 때도/찰싹 붙어 균형을 잡아주는 짐이다/…/이 산등성이 하나 오르는데도/애물 같은 등짐이 내 중심을 잡다니/내 무게를 받아주는 악처 같은 빽/나도 짐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짐이면서 빽이 되는 따뜻한 등짐.’(임영조의 ‘따뜻한 등짐’) 가족은 고를 수 없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형제는 가족의 일원이었고 앞으로도 가족이다. ‘짐’이건 ‘빽’이건 각자 할당된 몫은 기꺼이 책임지는 게 도리일 것 같다.

모든 자식이 한결같이 소중하다 하면서도 자녀에 대한 편파적 애정이 남긴 상처는 숱한 작품의 소재로 등장한다. 고른 애정을 나눠주고 키운 형제라도 재능이나 운까지 균등하게 물려줄 순 없기에 생기는 감정의 골도 깊다. 어떤 유명 작가는 당연한 권리인 양 언제나 손 내미는 형제 때문에 화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어느 날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예술적 재능 역시 부모에게 상속받은 무형의 유산이므로 그 결실을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고. 그러자 속이 편해졌다. 부모 형제 자식, 이름 하여 가족은 내가 덕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돕기 위해서 운명적으로 엮인 사이라는 얘기였다.

불평 대신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나라고 하는 존재를 형성하는 원초적 퍼즐 조각을 공유하는 형제, 내가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상처와 기쁨의 추억을 나눌 자매가 있다면, 그것은 부모가 떠맡긴 짐이 아니라 귀한 선물로 여길 일이다. 형제자매가 없는 이의 눈으로 보면 자명한 일이다. ‘일생 동안 고락을 함께할 동지’로 부모가 짝꿍 지어준 사람들, 해가 갈수록 서로 닮은 모습으로 늙어가는 오빠들과 언니를 바라보는 마음이 새삼 짠하다.

‘우리 식구를 우연히 밖에서 만나면/서럽다/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밍키를 보면/서럽다/밖에서 보면/버스간에서, 버스정류장에서/병원에서, 경찰서에서…/연기 피어오르는/동네 쓰레기통 옆에서.’(김영승의 ‘반성 673’)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
#5월#기념일#형제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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