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직분(職分)의 한계를 넘어선 행위를 참월이라고 부른다. 논어 팔일(八佾)편에 공자가 노나라의 실력자 계씨(季氏)를 탓하여 이르기를 “팔일무(八佾舞)를 추게 하다니, 이것을 용서한다면 용서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말한 대목이 있다. 팔일무는 천자(天子)를 위해 64명이 8명씩 8열로 추는 춤으로서 제후(諸侯)는 6열, 대부(大夫)는 4열, 사(士)는 2열로 추도록 돼 있다. 계씨가 일개 대부의 신분으로 천자의 팔일무를 추게 했으니 공자가 참월이라고 분개한 것이다. 국회,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너다
공자는 법(法)이 아니라 예(禮)의 위반을 말했다. 현대 정치에서도 법에 명확한 금지는 없어도 각 기관이 지켜야 할 직분의 내적 한계가 있다. 황우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통과를 주도한 국회법은 여야가 다투는 쟁점 입법의 의결정족수를 5분의 3으로 높인 것으로 원칙적으로 해서는 안 되고, 한다면 헌법 개정으로나 해야 할 일을 국회 입법으로 해버린 현대판 참월에 해당한다.
헌법은 “국회는 헌법과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일반정족수를 정해놓고 강화된 특별정족수는 헌법에, 완화된 특별정족수는 법률로 정하고 있다. 개정 국회법에 따르면 소수당이 반대하는 쟁점법안은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에서 각 단계마다 재적의원 5분의 3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한다. 헌법만이 강화된 특별정족수를 규정한 정신을 훼손한 것이다.
이것은 현 국회의 차기 이후 모든 국회에 대한 참월이기도 하다. 비단 문을 닫는 현 국회가 차기 이후 국회의 의사 진행 규칙을 정했다는 점에서, 즉 남의 일을 자기가 했다는 점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현 국회는 일반정족수로 재적의원 5분의 3을 의결했지만 차기 이후의 국회가 일반정족수로 돌아오려면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에서 각각 5분의 3으로 의결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어떤 정당도 혼자 국회 의석의 5분의 3을 차지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힘들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국회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렸다.
재적의원 5분의 3은 60%를 의미한다. 60이 50을 대신하는 것은 민주주의 일반 원칙에 대한 참월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100, 즉 만장일치 합의다. 그러나 50에서 100으로 갈수록 합의에 드는 비용이 증가한다. 50은 정당성의 요건을 맞추면서도 비용을 최소화하는 숫자다. 그러나 비용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과반은 항구적인 과반이 아니라 잠정적인 과반이다. 현재의 다수당은 미래의 소수당이 되고 현재의 소수당은 미래의 다수당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현재의 과반에 승복하는 것이다. 물론 소수자 보호가 특별히 필요한 경우 비용 증가를 감수하고서라도 합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그런 예외는 헌법만이 정하고 있다.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개정 국회법
조장(助長)이란 말은 춘추시대 어리석은 송나라 사람이 묘목이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해서 그것을 뽑아 올리고는 ‘내가 묘목을 도와서 자라게 했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다. 성장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결국 묘목을 말라죽게 해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몸싸움을 방지하고 대화의 정치를 조장한다는 취지로 개정된 새 국회법이 어느 다수당도 혼자서 결정적 입법을 하지 못할 국회를 만들었다.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은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해 독자 입법권을 얻기 위해 기를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총선에서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한국만이 처하게 될 이 독특한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현 국회 다수당의 원내수장인 황 대표다. 이런 입법을 주도해 놓고도 하회탈 웃음을 짓는 그를 보면서 역사 앞에 죄를 짓는지도 모르는 결정을 참으로 태연히 해치운다는 인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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