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 다시 오마 간곡히 다짐해도/보내는 이 눈물로 옷깃 적시거늘/조각배 이제 가면 언제나 돌아오나/보내는 이 쓸쓸히 강가에서 돌아가네.’ 연암 박지원이 마흔셋에 요절한 그의 맏누님을 위해 남긴 묘지명(墓誌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다. 묘지명은 죽은 사람의 이름 신분 행적을 기록한 글을 말한다. 묘지명은 둘로 구성된다. 산문으로 그 행적을 기록한 ‘지’와 운문으로 고인을 기리는 ‘명’이다. 명에 해당하는 이 시 속의 조각배(片舟)라는 표현에 눈길이 가는 이유가 뭘까.
▷연암은 누님의 상여를 싣고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묘지명을 지었다. 연암의 자형은 상처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가족을 데리고 서울을 떠난다. 당시 그 배는 한강과 중랑천 두 물줄기가 만난다 하여 두무개로 불리던 지금의 서울 성동구 옥수동 인근 나루터를 출발해 경기 양평으로 떠났다. 연암은 새벽녘 그 배를 배웅하고 돌아가다 강가에 말을 멈춰 세우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조각배를 바라보며 누님과의 추억을 더듬는다.
▷열여섯 나이의 누님이 시집가던 날, 여덟 살 연암은 새신랑 행세를 하며 누님을 놀린다. 부끄럼에 몸 둘 바 모르던 누님은 연암의 이마에 빗을 떨어뜨린다. 어린 연암은 울며불며 난동을 부린다. 누님의 분가루에 먹물을 섞고, 거울에 침을 뱉어댄다. 누님은 아끼던 노리개를 내주며 성난 아우의 마음을 달랜다. 누나를 시집보내던 남동생의 상실감은 고스란히 강가에 선 연암의 슬픔과 겹쳐진다. 그때 무엇이 연암의 눈에 들어오는가. ‘강 너머 먼 산의 검푸른 빛은 시집가던 날 누님의 쪽찐 머리와 같았고, 강물 빛은 거울 같았고, 새벽달은 누님의 고운 눈썹 같았다.’
▷우리나라 첫 동요집인 ‘반달’(1926년)의 원본이 최근 발견됐다. 그 동요집 속지 첫 장에 ‘도라간(돌아간) 누이동생 덕윤이 영전에’라고 적혀 있다. 원본에 적힌 가사로 ‘푸른 하늘 은하물 하얀 쪽배에’로 시작하는 ‘반달’은 윤극영이 맏누이를 떠나보낸 슬픔을 담았다. 150여 년 전 연암이 누님을 싣고 떠나가는 조각배에서 누님의 빗을 떠올리고, 새벽달에서 누님의 눈썹을 읽어냈듯이 윤극영 역시 반달의 모습에서 누이를 싣고 서쪽나라로 떠나는 쪽배를 연상한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시심(詩心)의 공명(共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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