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下馬평과 운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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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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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궁궐이나 관청의 입구에 하마비(下馬碑)를 세웠다. 비석엔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모든 사람은 말에서 내리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고관대작이 말에서 내려 일을 보러 가면 마부들끼리 모여 앉아 잡담을 나눴다. 인사철엔 이들의 인사전망이 의외로 정확하다고 해 나온 말이 하마평이다. 지금은 관직의 인사이동이나 관직에 임명될 후보자에 관해 세상에 떠도는 풍설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하마평이 잘 맞는 이유는 짐작이 된다. 관직 인사가 유력자와의 인맥에 많이 좌우되던 시절 고급 관리가 요즘 누구를 주로 만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마부다. 마부들이 모여 대감님들의 동선(動線)을 이리저리 맞춰보면 누가 뜨고 지는지, 실세가 누구인지 꽤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대감님이 요즘 어떤 기생에게 푹 빠졌는지, 어떤 패거리를 은밀히 만나는지 같은 비밀스러운 움직임도 이들의 눈을 피하기 어렵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이 중국으로 밀항하려다 붙잡혔다. 검찰은 그의 운전기사 최모 씨에게서 “김 회장이 경기 화성의 궁평항에서 어선을 타고 밀항하려 한다”는 진술을 듣고 김 회장을 검거했다. 검찰은 주요 뇌물 사건이 터지면 피의자의 운전기사를 반드시 조사한다. 수표가 아닌 현금 가방으로 받으면 추적이 어렵지만 운전기사가 현장 주변에서 금품 수수와 관련된 상황을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운전기사는 승용차 뒷좌석의 휴대전화 통화 내용도 다 들을 수 있다. 요즘에는 운전기사가 뒷좌석의 대화나 통화를 듣지 못하도록 방음스크린 장치를 한 고급 외제차도 있다. ‘보안’을 요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주요 인사를 만날 때 몇 km 전방에서 승용차를 내려 택시로 옮겨 타기도 한다.

▷인테리어 업자 이동율 사장의 운전기사를 하다 2년 전 그만둔 최모 씨가 파이시티 관련 로비 사실을 알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이 사장을 협박해 1억 원을 챙겼다. 최 씨는 최 전 위원장에게 “당신이 이동율에게서 돈 받은 사실을 알고 있으니 돈을 달라”는 협박편지를 보내면서 돈 보따리를 찍은 사진을 동봉했다. 운전기사 손으로 옮긴 돈이었다. 승용차 뒷좌석 사람들은 모쪼록 운전기사를 조심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누가 봐도 문제될 것이 없을 만큼 주변을 투명하게 정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하마비#하마평#미래저축#파이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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