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마음껏 맵시를 뽐낸다. 백의민족(白衣民族), 전통적으로 흰옷을 즐겨 입었기에 얻은 별칭이다. 색깔은 사람들을 단합시키는 힘이 있다. 2002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를 비롯한 붉은색 물결을 생각해보라. 기업이나 단체에서 구성원들에게 같은 색상의 유니폼을 입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일본은 조선인들이 흰옷으로 뭉치는 걸 심히 경계했다.
룡표 꼿표 마름모표 물감 광고(만세보 1907년 6월 27일)에서는 흰옷을 그냥 입지 말고 염색해서 입으라고 한다. 할머니가 물들이는 옷감을 양손으로 쫙쫙 펴며 “이 물감은 빗도 곱고 드리기도(물들이기도) 쉬운 상등 물감이니 사다 드려 보시오”라고 권한다. “룡표와 꼿표와 ◇표난 세상에 뎨일(제일) 물감”이라면서 용표, 꽃표, 마름모표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염료라고 강조했다. 며느리로 보이는 여성은 방망이를 두들기고 빨래하며 “이 물감은 빠라도(빨아도) 빠지지도 안코(않고) 벗지도 아니하난 참 죠흔 물품이오”라고 한다. 이 광고에서는 라인 드로잉으로 묘사한 모델의 입에서 카피가 튀어나가는 레이아웃을 했는데, 요즘 기준으로 봐도 섬세한 디자인이다. 더욱이 이 광고는 상품을 사용해본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증언식 기법을 쓰고 있는데, 지금에 와서는 흰옷 배척 운동이라는 정치적 의도를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다.
1905년 10월 경무사(警務使·경찰청장) 신태휴는 흰옷은 비위생적이며 미개한 데 비해 검은색 옷은 위생적이며 문명의 징표라면서 검은색 옷을 입으라는 법령을 반포했다. 순검(巡檢·경찰)들은 흰옷 입은 사람들을 잡아 옷에 ‘흑(黑)’ ‘묵(墨)’ ‘염색(染色)’ 같은 글자를 써대며 염색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횡포를 부렸다. 사람들은 흰 천을 사고 일본산 염료를 구입해 염색해서 옷을 지어 입을 수밖에. 이로 인해 일본의 염료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진출하는 발판을 다졌다. 그토록 손쉽게.
이런저런 외국 패션 브랜드는 알아도 백의민족이 뭔지 모르는 젊은이가 늘고 있는 오늘날, 하루쯤 날을 잡아 모두 흰옷을 입어 보면 어떨까. 이제와 새삼 ‘흰옷 입는 날’ 국민 캠페인을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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