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아이돌’을 이따금 TV에서 본다. 성공이 할퀴고 간 상처가 깊어서 오랫동안 아팠다는 후일담을 털어놓으며 눈물짓는다.
송나라 때 학자 정이(程이)는 ‘인생의 세 가지 불행’ 중에서 어린 시절 과거에 급제하는 소년등과(少年登科)를 첫 번째로 꼽았다. 소년등과야말로 부모형제를 잘 만난 것(석부형제지세·席父兄弟之勢)이나 뛰어난 재주와 문장력을 가진 것(유고재능문장·有高才能文章)보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교만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였다.
그런데 ‘현대판 소년등과’는 예전보다 독해서, 당사자를 높이 헹가래쳤다가 전력으로 바닥에 메다꽂는다. 금방 주목받고 성공했다가 삽시간에 추락하는 것이다. 아이돌 연예인들만이 아니다. 많은 청년 성공의 주인공이 그렇다. 그런 성공은 ‘초저녁 꿈’처럼 순식간에 지나간다. 오랜 준비보다는, 시(時)와 세(勢)를 잘 만난 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래도 좋으니까 한번 누려보기라도 했으면’ 하고 바라지만 청년 성공이 펄 벅의 소설 ‘대지’에 나오는 메뚜기 떼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쓸어간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한참 성공가도를 달릴 때도 주인공은 내심 불안하다. 어떤 성공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공이 지나간 이후의 기나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 일찍 성공한 남자들의 고민이다.
그런 고민을, 식구들이 해결해준다. 제각각 권리를 주장해 수많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것이다. 순진한 사람들이 부랴부랴 뛰어든 일의 결과가 좋을 턱이 없다. 사기를 당하거나 망하고 덤터기까지 쓴다.
주인공이 책임을 떠맡는다.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자신의 성공을 후회하고 저주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벼락 성공’이 ‘준비되지 않은 가족’을 망치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몰락은 성공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몰아쳐온다. 이 무렵이면 사랑이나 신뢰처럼 가족 간에 갖고 있던 기본적인 것들조차 이미 사라진 상태다. 얽히고설킨 욕심들이 메뚜기 떼처럼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남아날 것이 없다.
청년 성공은 그 자체가 딜레마다. 이른 나이의 성공은 만만하게 여겨지게 되어 있다. 가까운 사람들이 ‘내 것이 네 것이며, 네 것이 우리의 것’이라며 가장 먼저 쥐고 흔든다.
그래서 주인공이 굳건하게 중심을 지킬 수 없는 성공이란, 거센 바람에 휘날리다 실이 끊겨 사라질 가오리연과 다를 게 없다.
‘왕년의 아이돌’이라고 해서 인생의 황금기가 지나버린 것은 아닐 게다. 남자의 진짜 성공은 가족의 중심에 서는 나이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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