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영어 표현에는 뭐가 있고 우리말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 춘향전이나 심청전은 거들떠보지 않던 사람들도 ‘이제 스토리텔링의 시대’라며 열을 올린다. 영어 표현이니까 뭔가 더 있겠지 싶겠지만 우리말로 ‘이야기하기’ 아닌가. 이야기란 ‘귀로 먹는 약(耳於藥)’이나 ‘약보다 이로운 것(利於藥)’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우리는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이야기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하면서 사회구조를 이해한다. 최근에는 이야기하는 사람을 뜻하는 호모나랜스(Homo Narrans)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출판사 신문관의 소인국표류기 광고(소년 1908년 11월 1일)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최남선 최창선 형제가 주도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월간지 ‘소년’ 창간호에 실렸던 책 광고다. 책 제목을 헤드라인으로 삼아 다음과 같은 보디카피를 덧붙였다. “이 책은 순 국문으로 ‘껄니버여행기’의 상권을 번역한 것인데, 우리의 듀머니(주머니)에도 열아문(여남은) 스무나문 ㅅ식(씩) 딥어너흘만한(집어넣을 만한) 알(아는) 사람 사난(사는) 곳에 드러가 그 닌군(임금)의 사랑을 밧고 행세하던 이약이(이야기)라 긔긔묘묘한(기기묘묘한) 온갓 경력이 만소.” 요약하면, 우리말 번역본이며 주머니에 쏙 들어갈 크기로 걸리버가 겪어나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는 것.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여행기’(1726년) 총 4부 중에서 제1부인 소인국(릴리퍼트)의 출판고지 광고이다. 제목 아래에 ‘금월말 출수(出수)’라고 강조했다. 출수(물건을 내서 팔기 시작함)라고 썼던 데서 출간이나 출판이란 말은 이보다 나중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광고 왼쪽의 주문규정 첫 번째는 “본관에서 발간하난 도서는 모다(모두) 전금(前金·선금)을 요하나니 전금이 아니면 발송티 아니하옵”이다. 선금을 받고 나서야 책을 배송했던 것인데, 이런 관행은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는 창조하지 않고 스토리텔링이나 콘텐츠라는 말을 구호로만 제창하고 있는 지금, 기기묘묘한 온갖 상상력이 깃든 이야기를 듣고 싶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며 더는 말로만 외치지 말자. 걸리버여행기 같은 흥미진진한 서사(이야기)가 정말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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