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곽노현의 ‘교육 희망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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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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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는 교사에게 막말을 해대던 아이였다. 못돼서가 아니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라는 질병 때문이다. 약을 먹으면 밥을 못 먹고, 그래서 약을 거르면 말과 행동이 통제가 안 돼서인데 학교에선 그걸 몰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박민숙 선생님이 밥을 챙겨 먹이고, 똥 싼 바지를 빨아 입히고, 그림 실력을 칭찬해주자 승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반신 마비 때문에 마음만큼 승리를 돌볼 수 없었던 엄마에게 박 선생님이 얼마나 고마웠을까.

▷내 아이가 박 선생님 같은 교사를 만나는 것이 보통 엄마들의 바람이다. 그것이 교육의 희망일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스승의 날(15일)을 하루 앞두고 발표한 ‘서울교육희망공동선언’에서 학교를 ‘소수의 승리자를 만들기 위해 다수를 패배자로 전락시키는 곳’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학생회와 학부모회 활성화, 교원업무 정상화, 대학입시 개선 등을 통해 학교교육과 사회구조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곽 교육감이 말하는 희망은 늘 이렇게 답답하고 팍팍한지 모르겠다. 교사가 학생을 잘 가르치는 학교, 학생이 박 선생님 같은 교사로부터 잘 배우는 학교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안 되나.

▷2010년 교육감 선거 때 상대 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1심에서 3000만 원, 2심에선 이보다 높은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사람이 바로 곽 교육감이었다. 잘못이 드러나면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척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는 아직까지도 ‘선의(善意)였으므로 무죄’라고 주장한다. 자기처럼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을 키우고 싶은지 취임 직후 체벌금지 지시를 내리면서 반성문 쓰기까지 금지했다. 7월경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면 교육감직을 잃을 공산이 큰데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학부모회 등 자신의 선거를 도와준 단체들만 모아놓고 공동선언이라니, 곽노현의 교육정책 대못 선언 같다.

▷학부모들이 교사나 교육당국자에게 원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요즘 뉴스를 들으면 덜컥 겁이 나는 부모들은 자녀가 왕따 폭력에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공부하기 싫어하던 아이가 선생님 잘 만나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되고, 친구들과 잘 못 지내던 아이가 특별활동 덕분에 성격이 달라지는 것같이 작은 변화여도 고맙고 충분하다. 우리 모두 한 분쯤은 그런 스승을 가슴에 모시고 산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횡설수설#김순덕#곽노현#스승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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