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의 파인리지 인디언보호구역은 코네티컷 주 크기와 맞먹는 광활한 초원이다. 동시에 그저 돈이 없다기보다는 숨이 막히게 만드는 절망적 가난이 깊게 뿌리내린 땅이기도 하다.
최근 부의 불평등을 놓고 ‘99% 대 1%’ 논쟁이 뜨거웠는데, 이곳 사람들은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또 다른 1%”에 해당한다. 파인리지는 정부의 빈곤대책과 원주민 보호시스템의 실패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다.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섀넌카운티의 2010년 1인당 수입은 미국 전체에서 꼴찌였다.
미국에서 빈곤은 알코올 혹은 약물 의존, 해체된 가정, 부실한 교육이 겹치며 점점 고착화되고 있다. 파인리지도 마찬가지여서 세대가 바뀌어도 가난은 자기 복제처럼 대물림된다.
“혼자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열두 살 이후 술을 마셨다는 벤이라는 30대 사내는 이렇게 한탄했다. “내가 무기력하고 하찮다고 느껴질 따름입니다. 그저 이 고통을 잊으려 술을 마실 뿐이죠. 하지만 고통만 가중될 뿐이에요.” 그는 술 마실 돈을 마련하려 범죄를 저지른 적도 있다. 아직도 보호관찰 대상이다. 다행히 최근 술은 끊었지만 알코올 의존 후유증으로 몸이 엉망이 됐다. 장애연금으로 근근이 버티긴 하지만 직장을 구할 엄두조차 못 낸다.
현재 파인리지의 실업률은 70%에 육박하고 있다. 구할 수 있는 직장이라곤 정부 채용이나 인디언부족 관련 일밖에 없다. 물론 인디언보호구역이 다 이렇진 않다. 도박사업 유치로 큰 수익을 내는 곳도 있다. 하지만 파인리지의 초원에선 그런 사업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곳에선 40대 이상 주민의 절반이 당뇨병에 시달린다. 결핵 발병률은 미국 전체 평균보다 8배나 높다. 성인의 3분의 2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이며, 이로 인해 신생아의 25%가 정신장애를 갖고 태어난다. 파인리지의 기대수명은 40대 후반인데, 이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보다 못한 수준이다. 인디언 가운데 고등학교 졸업자 비율은 10%에도 못 미친다.
왜 파인리지는 외부의 투자를 유치해 발전을 도모하지 않을까. 스스로 야기한 것이기도 하다. 기업가에게 ‘믿을 만한 노동자’란 신뢰를 주지 못했다. 인디언학교 운영자인 로버트 하트 씨는 “이곳 사람들이 게을러서 결근을 밥 먹듯 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털어놓았다.
그렇다면 이곳 인디언들은 영원히 빈곤에 허덕여야 할까. 해결하려면 꼭 개선해야 할 과제가 있다. 알코올, 약물 남용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법을 강화하든 치료사업을 벌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둘째, 투자를 막는 구조적 장벽을 없애야 한다. 인디언보호구역은 공공 지역이란 이유로 개인 투자자들이 담보 설정도 할 수 없다. 지원은커녕 규제만 가득하니 누가 투자하겠나. 마지막으로 인구 유입을 늘릴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원주민조차 이 땅을 등지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빈곤 탈출은 요원하다.
정부의 보호시스템이 실패했을지언정 다행히 희망의 싹이 보이고 있다. 미미하지만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원주민들의 교육 수준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또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인디언 본연의 전통문화를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우리 가족은 우리가 지킨다”는 문제가정 돕기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파인리지 인디언보호구역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일자리를 스스로 창출할 능력은 없다. 그러나 지난 2세기 동안 자신만의 문화를 지키며 놀라운 적응력과 경제회복 능력을 입증한 수많은 다른 인디언 부족들을 보라. 희망만 다시 찾는다면 불가능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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