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백희영]과학 근거한 정책결정으로 사회적 비용 줄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18일 03시 00분


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
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표한 2011년 한국의 과학경쟁력은 세계 5위, 기술경쟁력은 14위였다.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세계 22위)에 비해 훨씬 더 높다. 이 같은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이뤄지는 공공 의사 결정이나 공론장(公論場)의 담론 전개를 보면 과학에 근거한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심하다. 이로 인해 합리적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심대한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동일 분야의 과학기술인들 간에도 다분히 감성적인 논쟁을 벌여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는 경우가 있다.

물론 사적인 일이나 공적인 일을 막론하고 감성이 강력한 추진 동력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정치 지도자가 개인적인 매력이나 원활한 소통을 통해 추종자들(followers)의 힘을 한데 결집함으로써 전쟁이나 재난 등 국난을 극복했던 역사적 사례들을 찾아보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이성에 의거해 공공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때 그 사회는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추구할 수 있다.

국민 감성 자극하는 비과학 ‘괴담’

최근에 불거진 사회적 이슈들 가운데에는 과학적 지식과 자료에 근거해 이성적으로 접근했다면 훨씬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 많다. 4년 만에 다시 불거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논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력 안전 문제, 청소년들에게 해로운 인터넷 게임에 일정한 제약을 가하는 시책을 놓고 벌어지는 공방이 전형적인 예가 될 것이다.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 논의하면 대개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합의 도출의 가능성을 일부러 외면이라도 하듯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괴담’이 성행하고 온갖 설익은 주장이 대치하면서 소모적 논쟁이 벌어진다. 이 때문에 정책결정이 잘못되고 정책집행이 지연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최근 발표된 한 국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91%)가 과학기술의 발전은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응답했다.

물론 과학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사실 판단이라고 해도 궁극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이 추구해야 할 가치 기준까지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때로는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채 한 세대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한국이 이뤄낸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한국이지만 역기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운전자의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시청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네 명의 꽃 같은 사이클 선수가 희생된 사건도 있었다. 인터넷 중독, 개인정보 유출, 인터넷 사이트에 떠도는 각종 인신공격과 비속어, 유해 사이트에서 비롯된 청소년들의 자살이나 살인 사건 그리고 스마트폰 중독에 이르기까지 그 역기능 사례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인터넷 중독자가 170만 명에 이르고, 만 5∼9세 유아의 인터넷 중독률이 성인보다도 높다는 충격적인 발표도 있다.

이 같은 역기능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 역시 과학자들의 진전된 연구 결과와 이에 근거한 합의 도출 및 공공의사 결정에 의해 모색될 수 있다. 미국에서 설탕보다 무려 500배나 강한 단맛을 가진 저칼로리 첨가물로 큰 인기를 누렸던 사카린을 예로 들어보자. 그처럼 인기를 누리던 사카린이 1970년대 후반 들어 사용이 금지됐다. 동물실험에서 방광암을 유발했다는 보고가 있은 직후였다. 그 후 소량을 섭취한 경우 사람에게 암이 생길 위험이 없으며 사카린 대신 설탕을 섭취하는 경우 비만 유발 등 오히려 건강에 더 해로울 수 있음이 입증되면서 2001년부터 제한적으로나마 식용이 가능한 첨가물로 부활했다.

20여년 만에 ‘누명’ 벗은 사카린

과학기술을 지속적으로 발달시켜 특정 사안에 대한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밝혀내고 그에 따라 공공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면 궁극적으로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 최근 재연된 광우병 논란은 4년 전보다 차분하게 전개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과학자들이 개진한 다양한 의견에 근거해 정책조정이 이루어짐에 따라 국민이 신뢰감과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한다.

인터넷 발달에 따른 게임 중독이라는 현상도 과학기술계의 지속적인 노력과 합리적인 정책결정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국민 삶의 질 향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백희영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활과학대학 교수 hypaik@snu.ac.kr
#사회적 이슈#과학적 지식#과학적 사실#괴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