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15일 필리핀을 ‘소국(小國)’으로 지칭했다. 다이 위원은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 연설에서 “(중국은) 소국이나 가난한 국가에 대해 오만하면 안 되고 대국이나 부유한 국가에도 오만하지 않아야 한다”며 문제의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겸손과 신중이 다른 나라에 업신여김을 받아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며 “소국도 대국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필리핀처럼…”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필리핀 국민에게는 “소국 필리핀은 대국 중국에 대들지 말라”는 엄포로 들렸을 것 같다.
▷다이 위원은 중국 외교의 실무사령탑이다. 헝가리 대사,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 부부장(차관),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거쳐 2008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부총리급인 외교담당 국무위원으로 선출됐다. 완곡하고 두루뭉술한 표현을 선호하는 외교적 수사에 익숙한 그의 입에서 다른 나라를 깔보는 발언이 나와 심상치 않다. 중국인들만 모인 자리여서 부담 없이 속마음을 드러냈을 수도 있다. 중국 언론도 소국론(論)을 제기하고 있다. 환추시보는 “필리핀 같은 소국과 일대일로 맞서지 말자. 대국의 도량을 갖자”는 기사를 게재해 민관이 손발을 맞추고 있다.
▷중국은 필리핀과 현재 영유권 분쟁 중이다. 지난달 8일 필리핀 군함이 남중국해 파나타그 섬(중국명 황옌다오)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 8척을 나포하려 하자 중국 초계함이 출동해 장기 대치가 시작됐다. 푸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주중 필리핀 대리대사를 불러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중국인의 필리핀 여행도 중단됐다. 분쟁지역은 필리핀에서 230km, 중국에서 1000km 떨어져 있다. 필리핀은 중국이 자국 영토를 욕심낸다고 발끈한다.
▷중국은 패권(覇權)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지만 영토 분쟁이 벌어지면 태도가 싹 달라진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나흘 전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회담 요구를 거부했다. 최근 심해진 일본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주장에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일본도 무시하는 중국이 필리핀을 소국으로 취급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중국이 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포기하고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 삼아 기세등등하게 나가는 ‘돌돌핍인((달,돌)(달,돌)逼人)’ 시대로 접어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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