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부끄럽게도 고아 수출국 1위다. 연도별 통계로는 몇 해 전부터 중국 인도 등 인구대국에 선두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인구 비율로 보면 여전히 세계 1위다.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공식 비공식적으로 20만 명 이상의 고아가 해외에 입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0년대는 입양아의 대부분이 전쟁고아였으나 이후 주로 미혼모의 자녀가 입양됐다.
▷한국 아이들의 해외 입양 누적 통계를 보면 미국으로의 입양이 가장 많다. 그 다음이 유럽이다. 유럽 개별 국가로는 프랑스가 가장 많다. 해외 한인 입양아 중 프랑스에서 최초의 장관급 각료가 나왔다. 플뢰르 펠르랭 중소기업·혁신·디지털경제 담당 장관이다. 한국명 김종숙. 생후 6개월 만에 프랑스로 보내졌다.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와 최상위 졸업생들이 들어가는 감사원에서 일했다. 그는 버려진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중요한 일은 우연히 일어난다’는 깨달음으로 극복했다.
▷유럽은 아시아계에 미국보다 훨씬 배타적인 곳이다. 미국처럼 아시아계 이민자 가족의 2, 3세가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차라리 외모는 동양인이지만 사고방식은 유럽인이나 다름없는 입양아들이 정관계에 진입하기가 더 용이하다. 2009년 독일에서 베트남 입양아 출신의 필리프 뢰슬러가 보건장관으로 입각해 화제가 됐다. 그는 독일 최초의 비(非)유럽계 각료였다. 프랑스에서는 2007년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후 라시다 다티 법무장관이 북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최초로 입각했다. 아시아계는 이번에 한국계 장관이 처음이다.
▷성공한 입양인의 그늘에 훨씬 더 많은 입양인들의 실패가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에서 스웨덴으로 입양된 한국 여아 수잔은 남동생으로부터 “이 중국 애와는 같이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펠르랭 장관은 “나는 째진 눈을 갖고 있지만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당찬 여성이다. 프랑스 언론은 ‘가시가 있는 장미’라고 표현했다. 그의 성공은 이를 악물고 산 결과인지 모른다. 유럽의 한인 입양아 중에는 부적응으로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이들이 적지 않고 목숨까지 끊는 일도 있다. 펠르랭 장관처럼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낯선 땅에서 그저 평범하게 살아주는 것만도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