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필리핀 간의 남중국해 황옌(黃巖·영어명 스카버러) 섬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달포가 넘도록 이어진다. 양국의 오랜 대치는 중국이나 필리핀이나 먼저 물러서면 앞으로 이 섬의 영유권 분쟁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국의 대치는 각자의 국내 정치 및 여론과도 직접 연결돼 있다.
중국은 분쟁이 시작될 때부터 군사력을 동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중국 매체들이 보기에 필리핀이 ‘군함을 동원해 (중국 어선을) 수색 및 나포한 것’은 매우 자극적인 행동이다. 중국은 황옌 섬 분쟁이 ‘군사충돌’로 비화될 경우 분쟁을 해결할 수 없을뿐더러 일단 공격을 하면 현재 방관하거나 침묵 중인 아세안 각국이 어쩔 수 없이 입장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공개적으로 중국의 군사행동을 비난할지 모른다. 심할 경우 국제여론은 필리핀 편에 일방적으로 설 것이다. 중국은 이 분쟁에서 직접 무력을 동원할 수 없고, 적어도 먼저 총을 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필리핀으로서는 중국이 먼저 무력을 동원하면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 먼저 미국과 필리핀 간의 군사동맹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무력충돌은 필리핀의 영유권 주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도록 미국을 압박할 것이다. 최소한 미국으로 하여금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에서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하도록 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은 필리핀과 군사동맹이지만 현재까지 공개적으로 황옌 섬 방위를 선언한 적이 없다. 중국이 주변국과 벌이는 해양 도서의 영유권 분쟁 가운데,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열도)에 대해서만 미국은 미국과 일본 간의 동맹 조약에서 공동 방위 범위 내에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중국과 필리핀은 서로 다르게 국내 여론을 활용하고 있다. 4월 8일 분쟁 촉발 이후 중국 매체들은 이 사건을 집중 보도했고 중국은 여론으로 들끓었다. 민족주의 정서가 하루가 다르게 커졌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출동해 필리핀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크게 확산됐다. 중국 중앙정부도 황옌 섬 분쟁에서 물러섰다가는 국내 여론의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중국은 각종 준비조치에 들어갔다는 것을 공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적 해결을 주장했다.
특히 어려운 점은 분출하는 무력사용 주장과 중국 군부의 강경한 태도를 어떻게 달래느냐는 것이다. 5월 초 베이징에서 열린 중-미 간 전략 및 경제대화 이후, 특히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공개적으로 “미국은 중립을 지키겠다”고 밝힌 이후, 중국 정부는 국내 여론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국방부장은 공개적으로 군사력을 동원하려면 반드시 외교적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인민해방군 기관지인 제팡쥔(解放軍)보는 8일부터 필리핀 정부가 중국에 무력을 동원하도록 유도한다는 글을 잇달아 게재했다. 중국 외교의 최고사령탑인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도 반드시 외교적 경로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국내의 민족주의 정서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이 국면을 제어할 수 있다는 중국 지도자들의 자신감을 반영한 것이다. 외국에서 크게 보고 있는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 시 서기 사건이나 최근 시각장애인인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 씨 사건 같은 경우라도 중국 정계에 미치는 충격은 제한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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