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고용통계가 신바람이 났다. 실업자 수는 지난해 이후 ‘마(魔)의 300만 명 선’ 이하로 내려가 20년래 가장 좋은 성적이다. 올 4월 실업률은 7.0%로 유로존 17개국 평균치보다 3%포인트 넘게 낮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경제성장률이 미국의 ―2.7%보다 더 저조한 ―4.7%였지만 일자리 나누기로 해고가 거의 없이 버텼다. 요즘은 정상근무를 해도 일자리가 남아 남유럽의 고학력 실업자까지 끌어들인다. 하르츠개혁으로 고용 유연화
독일 ‘고용 기적’은 2003∼2005년 순차 시행한 ‘어젠다 2010’의 사회 노동개혁, 주로 ‘하르츠개혁’ 덕분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독일 고용연구소(IAB) 헤르만 가트너 연구원은 “글로벌 위기에 앞서 노동시장 유연화로 임금 조정을 한 것이 독일 기적의 뿌리”라고 밝혔다.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독일 경제성과는 노동개혁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하르츠개혁 과정은 고용 기적만큼이나 부럽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2002년에 만든 개혁위원회에는 폴크스바겐의 인사담당 이사 출신인 페터 하르츠 위원장과 기업인 노동자 상공인 정치인 학자 등 15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과도한 복지와 저성장-고실업의 ‘독일병(病)’ 치유 방안 찾기에 매달렸다. 노사정(勞使政) 회의조차 열지 못하면서 제 밥그릇만 챙기려는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
하르츠개혁은 기업의 채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해고 보호막을 일부 벗기자는 것이다. 해고보호조항 적용대상을 5인 이상 사업장에서 10인 이상 사업장으로 바꾸고 수습기간과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기간을 늘리는 내용이다. 실업자가 저임 또는 일시적 일자리라도 적극적으로 취업하도록 미니잡(mini-job) 미디잡(midi-job)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일자리에 사회보험료를 감면해주는 방안도 들어 있다. 국내에서 이런 방안을 내놓았다가는 “해고만 쉽게 만들고 정규직 대신 ‘1년에 두 달 직장’에 다니라는 거냐”며 욕깨나 먹을 것 같다.
중도좌파 슈뢰더 총리는 하르츠개혁으로 인기가 떨어져 선거에서 졌다. 중도우파 앙겔라 메르켈 후임 총리는 2005년 첫 의회 연설에서 “어젠다 2010으로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문을 열게 한 전임 슈뢰더 총리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하르츠개혁을 계속 추진한 것은 물론이다. 전 정부의 정책이라면 뒤집어놓고 보는 우리 대통령들과는 크게 다르다.
노동시장 개혁은 숙제도 여럿 남겼다. 대표적 시사주간지 슈피겔 온라인판은 최근 “하르츠개혁으로 한 회사에 4종류의 직원, 4개의 세상이 생겼다”며 “사회적 평등을 더 이루기 위해 ‘어젠다 2020’이 절실하다”고 꼬집었다. 월 400유로(약 60만 원) 이하의 미니잡 근로자는 2003년 550만 명에서 지난해 700만 명으로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위기 때 효과적이었던 미니잡은 향후 일자리 창출에 방해가 되므로 점차 줄이라고 권고한다. 독일에도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 문제처럼 아직 손대지 못한 개혁과제가 남아 있다. 복지보다 일자리, 정치권도 변해야
한국은 독일에 비해 실업률은 낮지만 고용률이 8%포인트나 뒤지는 등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런데도 노동개혁 없이 버티고 심지어는 재정을 풀거나 기업을 윽박질러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는 슈뢰더, 하르츠, 메르켈이 없기 때문인가, 고용과 사회보험의 위기를 제대로 못 느낀 때문인가.
요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치권이 무상복지 대신 일자리 창출을 화두로 삼기 시작한 점이다. 역대 정부가 말로만 때웠던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내년에라도 추진할 수 있다면 성장과 일자리 부족을 크게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실망할지 모르지만 대선을 앞두고 그려보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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