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어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1, 2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1, 2심 판결이 원용한 일본 법원의 판결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을 불법으로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므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우리 헌법과 법률적 관점에서는 불법적인 강점(强占)이라는 법해석이다. 따라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인식을 전제로 일제가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국인에게 적용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식민지배로 피해를 본 우리 국민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여러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을 인정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우리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고 방치한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최고재판소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패소를 확정 판결한 만큼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일본에까지 효력을 미치기는 어렵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최종 승소할 경우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와 협상에 나설 수 있고, 두 나라 정부가 피해 구제에 합의하면 배상을 받을 길이 열릴 수도 있다.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개인청구권이 소멸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한일 청구권협정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부인했기 때문에 일제의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이 일제강점기의 구(舊)미쓰비시중공업, 구일본제철과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점을 내세워 원고들의 청구를 거절한 것도 법적으로 동일한 회사로 봐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7년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노역자 167만 명에게 6조 원이 넘는 보상금을 지급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독일 정부가 절반을 부담했고, 폴크스바겐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전쟁 중 강제노역으로 돈을 번 기업들이 나머지 기금을 출연했다. 강제징용, 군위안부 동원 등 파렴치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도 보상은커녕 진심 어린 사과조차 거부하는 일본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일본은 전쟁노예로 동원된 피해자들의 아픔을 달래줘야만 지난날의 과오를 속죄(贖罪)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