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경선을 위한 오픈프라이머리(open primary·완전국민경선) 제도를 둘러싸고 정치권 논쟁이 격화하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대선 후보들은 이 제도의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민주통합당은 19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이를 위한 법안 제출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사실상 ‘불가’ 방침을 내비쳤다. 당심과 민심의 조화 도모, 정당과의 연대감 강화, 경선 흥행 효과 확대, 본선 경쟁력 제고 같은 장점도 있지만 정당정치 훼손, 역(逆)선택의 문제, 대규모 조직·동원선거, 시간 부족 등의 단점이 훨씬 많다는 지적에서다.
私黨化 막고 정당정치 개혁 가능
오픈프라이머리는 단순히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게 아니라 한국 정치의 근본적 개혁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정당 개혁의 시각이다. 미국은 1903년 위스콘신 주에서 처음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의원과 당원들이 보스의 명령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는 ‘머신 정치’를 타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니 의원들이 당 보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의정 활동에 임하면서 강한 의회가 만들어졌다. 미국은 주별로 대선 후보 선출 방식을 정하고 있는데 70% 이상의 주에서 프라이머리를 채택하고 있다. 더구나 1970년대 이후에는 오픈프라이머리를 채택하는 주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제도가 정당정치를 훼손한다면 이런 추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특정 인물이나 정파가 당을 사당화(私黨化)해 패권적으로 운영하는 게 정당정치를 훼손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픈프라이머리는 정당정치를 훼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보스정치와 계파정치를 막아 정당정치를 정상화할 수 있는 기제이다.
둘째, 정치 참여와 개방의 시각이다. 이 제도로 경선 흥행성과 본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런데 선거 경쟁력은 이 제도의 부수효과이지 본질이 아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채택되면 누구나 지지 정당과 당원 여부에 상관없이 경선 당일 특정 정당의 공직후보 선출을 위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민주성 개방성 공정성이 아주 높은 제도이다. 경선 선거인단의 규모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특정세력에 의한 부정, 조직선거를 막을 수 있다. 중앙선관위가 경선을 관리하고 여야가 같은 날 경선을 치르면 역선택의 위험성도 줄일 수 있다. 2007년 한나라당이 채택한 대의원, 책임당원, 일반국민선거인단, 여론조사를 2:3:3:2로 혼합한 제한적 경선에서 여론조사 응답자 1명이 6표꼴로 반영됐다. 어쨌든 오픈프라이머리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여론조사를 통해 대선 후보를 뽑는 기형적인 공천제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변화 거부하는 대세론은 위험
셋째, 제도화의 시각이다. 제도화란 인물, 상황, 우연이 아니라 사전에 정해진 규칙과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수에 맞춰 경선 룰을 바꿔서는 안 된다”는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 측의 주장은 일견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현행 경선 룰은 잠재적 대선후보가 어떤 형태로든 경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 이유야 어쨌든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 체제하에서 무소불위의 전권을 행사하면서 당을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에 이런 전제는 이미 무너졌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현행 경선 룰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기득권 논리가 될 수 있다. 제도화는 변화 거부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명분이 있고,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며, 다수의 경쟁 상대자가 불공정을 이유로 변화를 요구하면 제도를 바꾸는 것이 순리이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줘서 제대로 된 정당개혁을 하겠다는 명분보다 더 강한 명분이 어디 있는가.
최근 미디어리서치 조사 결과,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방식에 대해 현재 경선방식(30.3%)보다 완전국민경선(53.2%)으로 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 이재오 의원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중대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에서 경험했듯이 우리 국민은 허황된 대세론에 도취돼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아직 본격적인 선거구도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후보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대세론도 의미가 없다. 박 전 위원장은 2007년 경선 당시 “우리나라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볼 수 있고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진정한 화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열린 박근혜’의 자세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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