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에닝요의 말이 듣고 싶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5일 03시 00분


허문명 국제부 차장
허문명 국제부 차장
최근 기자는 한 축구팬으로부터 “브라질 축구선수 에닝요(전북현대 소속)의 귀화에 대해 찬반 논란만 있지 정작 당사자 목소리는 없다. 축구 이전에 그가 한국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귀화를 결심했는지 많은 축구팬이 듣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인터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 담당인 후배 기자에게 물었더니 “힘들 것이다. 전 언론매체가 인터뷰를 원하고 있지만 안 한다”는 답을 들었다.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기자들을 피하는 이유가 의아했다. 실제로 에닝요가 K리그에서 뛴 2007년 이후 기사를 검색해보니 그의 목소리는 별로 없었다.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 국적을 갖고 싶다. 태극마크도 달고 싶다. 아내, 부모와도 상의를 끝냈다”는 말 정도였지, 왜 귀화를 결심했고 한국을 사랑하는 깊이는 어느 정도이며 축구 최고 선진국인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느낀 점은 무엇인지 등을 충실히 파악할 수 있는 기사는 없었다.

지금 에닝요는 무슨 생각을 할까. 혹여 일부의 주장대로 한국말도 서툴면서 국적 취득을 월드컵 진출 수단 정도로 여기는 건 아닐까, 기자는 직접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17일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전북현대 구단주(현대자동차 사장)의 사무실로 찾아가 인터뷰 취지를 설명했다. 에닝요의 진정성을 확인하면 가감 없이 그의 말을 싣겠다고 했다. 구단주는 공감했고 바로 이철근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리를 놓아 주었다.

하지만 인터뷰가 성사됐다고 안도한 건 잠시뿐. 이 단장으로부터 “에닝요의 심리 상태가 매우 불안해 인터뷰할 수가 없다”는 전화가 왔다. 구단주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걸려온 이 단장의 거절 전화에 기자는 선수에게 인터뷰 취지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됐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었다. 그래서 이 단장에게 직접 만나 이야기할 것을 청했고 다음 날 오전 전북 전주의 사무실까지 찾아가 그를 만났다.

기자는 최근 축구팬들의 분위기를 전하며 특별귀화 문제에 대한 에닝요의 뜻을 인터뷰 기사에 실으면 여론을 바꿀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이 단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기자는 “2014년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에 최근 대규모 공장을 세워 현지 판매를 앞둔 현대·기아차로선 에닝요의 귀화는 회사 차원에서라도 적극 지원할 일이다. 지금 그의 마음이 불안한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언론에 밝히고 나면 마음이 풀릴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이 단장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인터뷰 의사를 본인에게 다시 한 번만 물어봐 달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거절했다. 그런 이 단장을 보며 “전북현대축구단이 에닝요의 귀화를 적극 돕겠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한 게 없다”는 축구계 인사의 지적이 떠올랐다. 이 단장에게선 에닝요 선수 앞에 놓인 절호의 기회를 최대한 배려해주려는 진정성을 느끼기 어려웠다.

며칠 뒤인 22일 대한체육회가 에닝요의 특별귀화를 추천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쉬움이 컸다. 물론 인터뷰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연 체육회가 그런 결정을 뒤집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에닝요가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게 된 데는 그에 대한 구단의 무관심과 방치, 팬들과의 소통을 거부한 불통이 한몫한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허문명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에닝요#귀화#브라질#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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