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이번엔 버틸 수 있을까. 어 회장은 24일 기자들과 만나 “저축은행 인수를 고려하지도, 연구하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6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3차 퇴출 저축은행 인수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KB금융 주주들로서는 백번 환영할 만한 발언이겠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 제일저축은행을 인수할 때도 그랬다. 처음엔 별 의사가 없는 듯했으나 금융 당국의 거센 ‘압박’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었다.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인수했다”고 어 회장은 말했다. 당시엔 KB뿐만 아니라 신한 우리 하나금융도 부실 저축은행을 하나씩 떠맡았기에 그의 말이 영 군색하게만 들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어 회장 정도의 최고경영자(CEO)라면 주주 가치를 위해 더 버텨줬어야 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에도 정부는 집요하게 신호를 보내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일부 금융지주사와 보험사가 (인수에) 관심을 보인다”면서 “저축은행의 부실을 털어내고 우량 자산만 가져가 달라고 하는데 싫어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자신 있게 반문한다.
김 위원장에게 “부실 저축은행을 왜 우량 금융사가 떠맡아야 하느냐”는 시장의 볼멘소리쯤은 들리지도 않는 듯하다. 부실 저축은행 정리는 국회의 동의를 받아 공적자금을 조성해 추진하는 것이 순리다. 이 정권으로선 당연히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이를 피해가려고 ‘우량 금융사 동원’이라는 편법을 쓰고 있으니 꼼수가 따로 없다.
어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가까운 금융권의 실세로 통하지만 김 위원장이 ‘국민경제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협조해 달라’고 했을 때 과연 이를 뿌리칠 소신과 용기가 있을까.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김 위원장을 상대로 어 회장은 어떤 논리를 펼쳐 보일지 궁금하다.
어 회장에겐 강정원 전 KB국민은행장의 사례가 어쩌면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2008년 하반기에 강 행장도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대전저축은행을 인수해 달라는 ‘협조’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부실이 너무 심하다’는 실사 결과를 보고받고는 이를 거부했다.
강 행장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대전저축은행은 KB국민은행 대신에 부산저축은행으로 넘어갔지만 부실만 더 커졌고, 결국 지난해 초 부산저축은행과 함께 영업이 정지됐다. 강 행장의 인수 거부가 바른 결정이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강 행장은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저 혼자만 살겠다는 무책임한 짓”이라는 당국자들의 비난을 들어야 했고, 금융권 안팎에선 “새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은 강 행장이 ‘괘씸죄’에 걸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가 2009년 말 KB금융 회장 후보로 단독 내정됐지만 감독 당국의 ‘표적 검사’ 끝에 낙마했고, 이어 KB국민은행장 자리까지 내놓아야 했던 데는 대전저축은행 인수 거부도 한 원인이 됐다.
어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임자인 강 행장을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어 회장은 취임 당시의 주가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 등 외부 변수 탓이라고 하지만 ‘금융 전문가’를 자처하는 그로서는 체면이 말이 아니다. ‘저축은행 추가 인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그의 말마저 허언(虛言)이 된다면 시장은 이에 상응하는 주가 하락으로 그에게 보복할지도 모르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