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오늘 저녁 부산대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이란 주제로 강연을 한다. 그가 18대 대통령 출마 여부를 확실하게 밝힐지 궁금하다.
마침 어제 한겨레신문은 대선주자 다자간 지지도에서 박근혜(43%)는 전달보다 조금 오르고 안철수(22.6%)는 조금 내렸다고 보도했다. 1 대 1 대결에서는 박근혜 53.5%-안철수 43.7%로 나왔다. 지난주 주간경향 여론조사에선 안철수가 12월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40.9%)보다 ‘출마하지 말아야 한다’(49.7%)는 응답이 많았다. 천장을 모르던 안철수 현상에 안철수 피로현상이 혼입(混入)되고 있기 때문일까.
안철수 안개가 걷힐 둥 말 둥 하는 사이 김두관이 안개 밖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오고 있다. 김두관은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레이스의 전초전으로 진행 중인 당 대표 경선에서 김한길의 선전(善戰)에 힘을 과시하면서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그는 열흘 뒤 경남 창원에서 ‘아래에서부터’라는 책 출판기념회를 갖는데 사실상 대선 출정식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안철수는 ‘보보스(BOBOS) 상류계급’의 이미지를 풍긴다. 세련된 매너와 고상한 취향의 부르주아(bourgeois)적 특성, 그리고 영적 기질과 모험정신을 내포한 보헤미안(bohemian)적 특성이 어우러진다. 반면 김두관은 질긴 잡초, 불굴의 돌쇠 이미지다. 그는 우리 사회의 후미진 농촌 이장(里長)으로 시작해 군수를 거쳐 일약 장관까지 지냈지만 전후(前後) 각종 선거에서 6번 고배를 마시고도 탈탈 털고 일어섰다.
권력의지와 승부사기질 강한 金
민주당 내 대선주자 선두를 지키고 있는 문재인은 이해찬과 손잡고 민주당을 친노(親盧) 기지화하는 데 성공했다. 문재인 대망론도 선거 고수(高手)를 자처하는 이해찬의 ‘틀 짓기’에 도움 받았다. 이해찬으로서는 문재인보다 김두관이 버거워서 싫을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에게 이해찬이라는 후광은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미지수다.
문재인은 ‘영원한 노무현 비서실장’이란 계급장에 익숙해 있었지만 김두관은 ‘노무현의 정치적 동지’라는 말로 표현되는 독자성을 숨기지 않는다. 문재인은 지난주 노무현 3주기 때 “이제 노무현을 놓아주겠다”며 문재인 정치를 선언했지만 ‘그게 무엇이냐’는 데서는 김두관만큼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이해찬 문재인과 가까운 문성근은 지난달 어느 인터뷰에서 “김두관은 (자신이 지사로 당선된)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단 한 번도 노무현 얘기를 안 했대. (노무현) 장사한다고 할까 봐. 그런 말 듣기 싫다는 거야”라고 전했다. 김두관은 이번 대선에서도 문재인이나 안철수와는 걸어온 길이 다르다며 자신의 인생 스토리로 승부를 걸 태세다.
문재인이 59세인 데 비해 김두관은 53세로 5년 후 19대 대선 때도 50대다. 그럼에도 김두관은 올해 대선에 배수진을 치고 운명을 거는 듯하다. 5년 뒤는 나이와 상관없이 이미 안희정 같은 ‘386 세대’의 시대가 될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안철수나 문재인보다 권력의지와 승부사 기질이 강해 보인다.
민주당 사람들은 안철수의 인기 부침에 따라 반(反)새누리당 단일후보 창출전략을 여러 형태로 바꿀 가능성이 있다. 안철수로 안심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끌어안고 버릴’ 수도 있다. 누구보다도 김두관은 안철수에게 순순히 호박씨를 까줄 리가 없다. 김두관은 정치 경험이 있어도 자신이 더 있고, 민심을 알아도 자신이 더 알고, 대통령직에 대한 절실함도 자신이 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양보하기 어렵다.
안철수는 그나마 지금까지는 국가 주요사안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고도 넘어갈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구글 검색 건수가 1100만 건이 넘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도, 검색 건수가 2600만 건이 넘는 한미 FTA에 대해서도 ‘아 안철수는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국민이 알 수 있도록 말한 적이 없다. 그저 “보수는 안정을 지향하고 진보는 발전을 지향한다. 상호보완적이다. 그러니까 대화를 하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3월 서울대 강연)는 정도의 말을 남겼다. 틀리지는 않지만 평이하고 한가한 인식이다.
영화 보며 시대정신 배운다는 安
4·11총선을 거치며 종북세력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을 때 안철수의 아버지는 “우리 아들이 요새 빨갱이가 어디 있느냐고 그러더라”고 말했다. 3월 서울대 강연에서 안철수는 시대정신을 알기 위해 영화를 많이 본다면서 국군과 인민군이 힘을 합쳐 미군과 싸우는 ‘웰컴 투 동막골’을 예로 들었다. 이 수준으로 만약 김두관과 준결승전을 벌인다면 대선 본선까지 갈 것도 없이 그 단계에서 배겨날 수 있을까. ‘지금 안철수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포장은 언젠가는 뜯어진다. 오늘의 안철수 강연도 한번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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