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이달 22일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한국과 같은 ‘A+’로 두 단계 낮췄다. 신용등급 전망은 한국이 ‘A+ 긍정적’, 일본이 ‘A+ 부정적’이다. 등급은 같지만 사실상 일본이 한국보다 낮아졌다. 두 나라 신용등급이 역전되는 날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최근 1년 동안 신용등급 강등이 잇따랐다. 이런 분위기와 달리 ‘피치 쇼크’가 일본을 덮치기 50일 전인 4월 2일 무디스는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A1 안정적’에서 사상 최고 수준인 ‘A1 긍정적’으로 높였다. 경제-안보 지키려는 노력 돋보여
우리 경제현실은 어렵다. 성장률 같은 지표경제도 그렇지만 체감경기는 더 싸늘하다. 글로벌 경제 불안이 길어지면서 세계가 모두 힘든데 무역 의존도가 큰 한국이 무풍지대일 리 없다. 하지만 국가신용등급을 둘러싼 흐름은 우리 경제가 적어도 다른 나라들보다는 위기를 잘 헤쳐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만약 한국의 신용등급도 외국처럼 추락했다면 실질적, 심리적 충격은 훨씬 클 것이다.
쏟아지는 해외발(發) 악재 속에서도 우리 경제가 상대적으로 선방(善防)하는 원동력은 뭘까. 국민이 다른 나라보다 현명한 덕분이라고 두루뭉술하게 둘러댈 수도 있지만 냉정히 말해 언어의 유희(遊戱)가 아닐까. 격려보다는 비난을 받기 십상인 기업과 정부의 역할이 컸다고 보는 게 ‘불편한 진실’에 가깝다.
특히 정치과잉 시즌에도 재정 악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분투해온 기획재정부에 눈길이 간다. 글로벌 투자가들이 많이 읽는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이 사설로 박재완 재정부 장관의 ‘반(反)포퓰리즘 투쟁’을 높이 평가한 것은 개인의 영예이기도 하지만 한국 경제와 정부에 대한 해외 시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박 장관과 함께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주목할 만하다. 김 장관은 “국군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수호자”라고 강조하면서 장병들의 눈빛을 바꿔놓았다. ‘김관진 국방부’는 얼마 전 한국경제의 발전상과 북한의 군사적 위협 등을 담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지켜야 할 나의 조국’이라는 책 17만 권을 전경련과 함께 발간해 모든 장교와 부사관에게 배포했다. 학창 시절 전교조 교육에 오염됐다가 요즘 군복무를 통해 확고한 안보관을 가진 젊은이가 늘었다는 말도 들린다.
이명박 정부는 대선에서는 압승했지만 출범 후 지지도가 급락했다. 맹목적 반대세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대선에서 그를 찍은 국민 중에도 냉소를 보낸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상당수 역대 정부가 대통령 임기 말엽 ‘식물 정부’로 전락한 것과 달리 MB정부는 대선을 불과 반년 남짓 남겨둔 시점에서 정권 차원의 힘은 빠졌지만 행정부는 큰 동요 없이 기능을 발휘하는 모습이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내각, 특히 국정의 두 축인 안보와 경제 주무 장관이 흔들리지 않고 부처를 이끌어가는 현주소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임기 말 개각, 득보다 실이 많다
올 하반기 한국에는 정치 경제 안보의 여러 측면에서 파도가 몰아닥칠 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대한민국의 근본이 흔들리거나 힘겹게 쌓아올린 경제적 성취가 무너져 쪽박을 차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행정부가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다. 흠이나 아쉬운 점도 있지만 박재완 재정부와 김관진 국방부가 나라의 앞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로부터 비교적 후한 평가를 받는 것을 다른 부처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김관진 박재완 장관을 개인적으로 감쌀 이유는 없지만 나는 특별한 돌발변수가 없으면 두 장관이 대통령과 함께 임기를 마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부처 사정을 속속들이 모르는 사람이 장관이 되면 기본 업무를 파악하는 데도 6개월 넘게 걸린다고 한다. 엄중한 안보와 경제 현실에서 그런 식으로 한가하게 허송세월할 여유가 지금 한국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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