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타정총(공기압을 이용해 못 등을 박는 데 쓰는 공구)을 잘못 건드려 2cm 길이의 U자 바늘이 손가락을 뚫고 손톱 위로 관통했다. 손가락은 다른 곳보다 핏줄이 많은지 금방 피가 펑펑 쏟아졌다. 종이로 된 접착테이프로 동여매고 나서야 피가 멈췄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고 그럭저럭 잘 아물었다. 이렇게 내 손가락 한두 개엔 반창고가 감겨 있는 날이 많다.
동양화와 서예 등 전통 표구, 손님의 주문을 받아 액자를 직접 제작하는 일을 한 지 30년이다. 작업이 약간은 거칠다. 톱질이며 대패질, 페인트칠에다 판유리 절단 작업까지…. 유리를 만져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그 날카로움은 면도칼이나 진배없다. 고무장갑을 끼면 좋은데 장갑을 낀 손은 불편하고 위험하다. 몰딩을 자르는 양날 기계톱은 목재는 물론이거니와 두꺼운 알루미늄 스틸도 두부 자르듯 잘라낸다. 날카로운 톱날에 장갑이 걸려드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작업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손톱 밑에 때가 끼는 것쯤은 다반사다. 아침마다 자루 달린 넓적한 솔에 세정액을 묻혀 손톱 밑을 닦는다. 어쩌다 한 번이면 모를까, 거의 매일 이런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손톱에 온통 세로 줄이 생겨 참 볼썽사납다.
열 살 무렵이던 1953년, 휴전 뒤 피란길에서 돌아온 내 고향 영천은 참으로 참담했다. 팔뚝만 한 불발 포탄이 개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상이용사와 고아들이 아침마다 깡통을 들고 구걸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초가라도 지니고 풀뿌리 나물죽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축복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그때는 그랬다. 유엔이 원조해 준 밀가루 없이는 도무지 먹고살 길이 없는 가난한 나라였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 규모가 세계에서 9번째로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오늘 같은 세상이 오리라 상상이나 했던가. 조국을 지키고자 산화한 전쟁의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5·18민주화운동 등 수많은 아까운 목숨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이뿐일까. 인력 송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정부시책에 따라 자원해서 독일로 떠난 2만여 명의 간호사와 광원들이 3년 이상 가족과 생이별해야 했던 것도 기억해야 한다. 중동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사람들, 베트남전 파병 용사들도 마찬가지다.
어찌 그들만이랴. 요즘도 우리나라는 한 해에 2500여 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다. 생을 못다 누리고 희생된 수많은 영령들이 금수강산 이 하늘을 어찌 잊을까. 구천을 헤맬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도 열악한 산업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가장들, 그 피붙이들의 걱정이 줄었으면 좋겠다. 저녁마다 손톱 밑의 때를 벗기며 ‘손톱아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는 이 땅의 모든 근로자들과 근대화 과정에 밑거름이 된 분들의 영혼이 평안해지도록 그 유가족들이라도 날마다 웃는 낯빛이면 좋겠다.
그들도 이 계절, 신록 우거진 동산을 가족과 함께 거닐며 아찔한 풀 향기를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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