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이 뚫리면 우리나라는 누가 지킬까? 휴전선에서 당장 전쟁이 터지면 육군은 미래로 간다. 육군이 내건 구호가 ‘미래육군’이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해군은 대양으로 가고(대양해군), 공군은 우주로 간다(우주공군). 해병대는 귀신 잡으러 가고, 예비군은 직장(지역) 지키러 가고, 방위는 고향 앞으로. 그러면 도대체 휴전선은 누가 지킬 것인가?
몇 년 전 휴전선에서 전방부대를 지휘하던 한 사령관이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인 국방전략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데서 비롯됐다는 우스갯소리다. 당장 휴전선조차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미래, 대양, 우주라는 구호는 공허하다는 것이다.
휴전선을 마주한 채 주적(主敵)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의 위험 앞에 미래의 에너지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원자력의 사고 가운데 어느 게 더 위험할까? 대중은 북한의 도발과 원전 사고에 대해 어느 쪽이 더 불안하다고 느낄까?
북한이 아무리 ‘서울 불바다’니 ‘혁명무력의 특별행동이 곧 개시된다’고 위협해도 생수나 라면을 사재기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도발 위협에 대한 불감증이라기보다 군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천안함이 폭침되고 연평도가 포격당해도 첨단무기와 넘치는 사기로 전력 우위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원전 사고에 대한 불안은 올해 들어 거의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작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참사 이후 고리 1호기 정전 은폐, 꼬리를 무는 납품 비리, 한국수력원자력 간부의 뇌물 수수 같은 사고와 비리가 잇달아 터지면서 원전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북한 도발에 대한 불안보다 원전 사고의 위험이 더 크게 느껴진다면 이제 원자력은 ‘안전’보다 ‘방위(防衛)’ 개념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후쿠시마 참사로 확인했듯이 원전은 이제 에너지 정책이라기보다 국토방위 같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에 맞서는 원자력방위의 첫 전선(戰線)은 고리 1호기가 될 것이다. 고리 1호기 폐쇄를 둘러싼 찬핵과 반핵 사이의 전선이 아니라 대형사고를 막기 위한 찬핵과 반핵의 공동전선이다. 이 공동전선에서 원자력방위 개념 아래 고리 1호기 폐쇄 시점을 올해부터 연장 수명이 끝나는 2018년 사이로 결정하면 된다.
독일의 반전 소설가 에리히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서 서부전선은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8년 독일 쪽에서 본 프랑스 국경선 부근의 전선이다. 쏟아지는 포탄과 총탄 세례로 전우들이 죽어가던 이 전선에서 소년병 파울 보이머는 잠깐의 정적에 나비를 보며 평화를 느끼다 갑자기 날아온 총탄에 쓰러진다. 그러나 야전사령부는 그날 전황은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판단하고 전문(電文)을 보낸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원전 사고와 비리가 잇달아 터지는데 ‘원자력은 청정에너지다’ ‘원자력은 안전하다’라고 하는 앵무새 답변은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보고처럼 한가로워 보인다. 원전에 대한 불안과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데 ‘원자력 강국’이라는 구호는 미래육군, 대양해군, 우주공군처럼 공허할 뿐이다.
“북한이 도발하면 원점(原點)을 타격하겠다”거나 “국산 순항미사일(현무3)로 ‘평양의 집무실 창문’도 겨냥할 수 있다”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싸늘한 경고가 믿음직스럽다. 국토방위와 마찬가지로 원자력방위도 최고 통수권자와 ‘원자력방위 장관’과 ‘원자력방위 사령관’이 틈나는 대로 전선을 시찰하고 점검해야 ‘원자력 강국’이 될 수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