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하태경의 ‘변절’과 임수경의 ‘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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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4일 03시 00분


황호택 논설실장
황호택 논설실장
임수경 씨가 전대협 대표로 북한 평양축전에 참석하고 김일성 주석과 손을 맞잡았을 때는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불어과 4학년이었다. 21세 대학생에서 올해 44세로 국회의원 배지를 단 그의 인식체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솔직히 궁금했다. 혁명의 피가 꿈틀거리던 젊은이들도 불혹(不惑·40)을 넘고 지천명(知天命·50)에 다가가면 사고가 성숙해지는 법이다.

1980년 중반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남쪽 젊은이들의 일부가 주체사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태경 씨도 그러한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지각이 깨어 있는 주사파는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고 북한 동포들이 굶어죽는 현실을 알고 나서 김일성주의를 버리고 돌아섰다. 하 씨는 전향 후 ‘열린북한방송’을 운영하면서 북한 민주화운동에 매진했다. 임 씨는 한 탈북자를 향해 “너 하태경하고 북한인권인지 뭔지 하는 이상한 짓 한다지? 하태경 그 변절자 새끼를 내 손으로 죽여버릴 거야”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하 씨의 전향이 임 씨 규정대로 변절이라면 그런 변절은 민족사적 세계사적 관점에서 올바른 선택이다. 하 씨를 변절자라고 매도하는 임 씨는 아직도 그 시대착오적 이념의 지조를 지키고 있다는 말인가.

임 씨는 3일 “‘변절자’라는 표현은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을 함께 해온 하 의원이 새누리당으로 간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었을 뿐 탈북자 분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북한인권운동을 “이상한 짓”으로 매도한 뒤 하 씨를 “변절자 새끼”라고 욕한 것이나 탈북자들을 향해 “변절자 새끼들”이라고 욕한 것을 보면 북한을 배신했다는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임 씨는 국회에 첫 등원도 하기 전에 치고 빠지는 기법부터 배운 것 같다.

북한 인권운동이 ‘이상한 짓’인가

임 씨는 1989년 6월 30일 평양에 도착해 8월 15일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귀국했다. 그가 지성을 갖춘 대학생이라면 북한에서 한 달 보름 동안 많은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필자는 짧은 일정으로 북한을 세 차례 방문했다. 북한에서는 안내원 없이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그들이 보여주는 것만을 봐야 한다. 그래도 북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알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금강산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북한 여성이 자전거를 타고 오다 현대아산의 관광버스와 마주치자 자전거를 던지고 담벼락에 얼굴을 파묻었다. 남한 사람들이 탄 버스도 보지 말라는 것이 북한 사회다.

워싱턴포스트지의 블레인 하든 기자가 쓴 ‘Escape from Camp 14’(14호 수용소에서의 탈출)는 미국에서 출간 직후부터 비소설 부문 상위권에 올랐다. 이 책에는 ‘수용소에 남아 있는 북한 사람들을 위하여’라는 헌사(獻辭)가 들어 있다. 하든 기자는 한국에서 출간된 탈북자 신동혁 씨의 회고록 ‘북한 정치범 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를 기초 자료로 삼아 신 씨를 미국과 한국에서 수십 차례 인터뷰해 거의 새로운 책을 쓰다시피 했다.

신 씨는 14호 수용소의 정치범 부모에게서 태어나 23년을 그곳에서만 살다 탈출했다. 수감자들은 경비원들이 지루하거나 기분 나쁠 때 특별한 이유 없이 구타를 당한다. 수용소 경비병 출신 탈북자는 “수감자들을 개나 돼지로 생각하고, 그들을 향해 절대로 웃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하든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수용소에 공급되는 유일한 단백질원은 똥통에 찾아오는 들쥐다. 군복을 만드는 피복공장의 여직공들 중에서 얼굴이 반반한 여성은 보위원 동지의 방 청소를 하러 불려가 성노리개가 된다. 여직공이 임신을 해 배가 불러오면 어느 날 수용소에서 증발한다. 반역의 피에 순수한 혈통의 피가 섞여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극한상황에서는 모자(母子)의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 씨가 어머니의 점심을 훔쳐 먹었던 날 배고픈 어머니는 괭이와 삽자루 등으로 닥치는 대로 아들을 두들겨 팼다. 신 씨는 형과 탈출을 모의한 어머니가 자신의 고발로 교수대에 매달려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질렀다’고 고소해했다. 그가 ‘사랑받지 못하다’ ‘평화’ ‘행복’ ‘미안합니다’ 같은 말과 개념을 배운 것은 북한을 벗어난 뒤였다.

20만 탈북자 향한 反人倫 폭언

임 씨가 큰소리친 것처럼 그 잘난 “대한민국 국회의원”으로서 정치범 수용소의 존재도 모르고 북한인권운동을 “이상한 짓”이라고 폄하했다면 의원 자격이 없는 ‘정치적 백치’에 해당한다. 북한의 인권실태를 알고서도 그런 말을 했다면 용서받을 수 없는 반인륜(反人倫) 폭언이다. ‘한명숙 민주당’은 욕쟁이 김용민으로 총선을 망쳐놓고 임수경으로 대선을 말아먹을 심산이었던 모양이다. 김재연 이석기 씨가 통합진보당의 실체를 알게 해 줬다면 막말녀(女) 임 씨는 민주당 종북의원들의 본색에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전대협#하태경#임수경#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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