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상훈]괴질(怪疾)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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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5일 03시 00분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14세기 중반 이탈리아 북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돌기 시작했다. 감염자가 속출했다. 100%에 가까운 치사율. 피부에 검은 반점이 나타났다 죽는다고 해서 흑사병(黑死病·페스트)이라 불렀다.

흑사병은 사방으로 확산됐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과 백년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전염병은 전쟁보다 무서웠다. 두 나라는 흑사병이 잦아들 때까지 휴전을 결의했다.

절망에 가까운 공포. 유럽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병을 퍼뜨린 주범으로 지목된 유대인에 대한 집단테러가 자행됐다. 곳곳에서 유대인 화형식이 거행됐다. 정적(政敵)을 제거하기에 좋은 기회. 마녀사냥이 기승을 부렸다. 미신도 횡행했다. 인간이 타락했기에 벌을 받는 것이라며 피가 날 때까지 제 몸을 채찍으로 쳐대는 ‘수행자’들도 등장했다.

흑사병은 이처럼 광기(狂氣)로 이어졌다. 첫 발병 후 십여 년 사이에 유럽 인구의 30% 이상이 줄어들었다. 광기가 없었다면 희생자의 수도 덜하지 않았을까.

중세유럽의 막바지에 창궐한 이 흑사병은 인류 역사상 첫 대유행병(Pandemic)으로 기록돼 있다. 훗날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쥐가 흑사병을 옮긴 매개체였다.

당시 도시들은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다. 페스트균을 보유한 쥐들은 식탁과 침대를 자유자재로 드나들었다. 페스트균이 성장하는 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면서도 유럽 사람들은 이를 자각하지 못했다.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괴질(怪疾)이라며 두려워만 했다.

괴질은 현대에 들어와서도 종종 나타났다. 1981년 미국 의학계에 새로운 질병이 보고 됐다. 과학자들이 병의 원인을 찾는 사이에 많은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 사람들은 이 병을 괴질이라 불렀다. 1983년 프랑스의 한 연구소가 원인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그 후 이 괴질은 후천성면역결핍증, 즉 에이즈(AIDS)라 불리기 시작했다.

2003년 3월, 홍콩에서 갑자기 고열과 호흡곤란, 기침 증세를 보이던 미국인 사업가가 사망했다. 그를 치료하던 의료진까지 감염됐다. 이 소식은 전파를 타고 금세 전 세계로 알려졌다. 이 괴질은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이 원인이란 사실이 밝혀진 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라는 이름을 얻었다.

괴질이란 단어는 묵직하고 괴기스럽다. 때로는 그 어감에서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사실 이 단어에는 미지세계에 대한 인간의 불안한 심리가 집약돼 있다. 이 불안감은 미지세계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줄어든다. 따라서 괴질의 천적은 과학이다. 과학이 발달하고 병의 원인이 밝혀지면 괴질의 생명력은 급격히 감퇴한다.

그런데 요즘은 병의 원인과 예방법이 모두 공개돼도 괴질 공포가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정보의 전파 속도가 병의 전파속도를 크게 앞지르면서 인터넷 공간에서 괴질이 괴담으로 확대 포장되는 탓이다. 일단 괴담의 프레임에 갇히면 ‘뻔한’ 질병도 괴질로 둔갑한다. 광기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적절하게 진화한 걸까.

최근 국내에서 때 아닌 괴질 괴담이 돌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결핵과 백일해가 집단 발병한 데서 괴담이 시작됐다. ‘한때 정복됐던 질병이 되살아났다. 망조다.’ ‘항생제가 듣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의학자들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다. 방역을 철저히 하고, 환자를 즉각 치료하면 될 일이다. 보건당국도 신속한 대응을 통해 괴담이 확산될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명백한 과학이 광기에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 괴질은 추억으로 족하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
#@뉴스룸#김상훈#괴질#백일해#결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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