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이작 뉴턴(1642∼1727)이 유복자로 태어났을 때 뉴턴의 집안은 양 234마리, 소 46마리와 제법 넓은 농장을 가진 중농이었다. 하지만 어머니 해나는 아들이 수학 공부보다는 목장일 돕기를 원해 그가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에 입학했을 때는 거의 지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뉴턴은 ‘서브사이저(subsizer)’로 학창시절을 보내며 친구들의 멸시를 받았다. 서브사이저는 부잣집 동료 학생의 ‘하인’ 노릇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학생이었다.
트리니티칼리지 도서관의 뉴턴 특별 전시공간에는 손바닥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작지만 도톰한 뉴턴의 수첩 등이 전시돼 있다. 어려운 고학시절 꼼꼼하게 물건 가격을 적어 놓았고 라틴어 단어도 깨알같이 써 놓았다. 대학 입학 전에는 남이 쓰다 버린 종이를 주워 빈칸에 수학 문제를 풀기도 했다.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살았던 여성 수학자 소피 제르맹(1776∼1831)은 이탈리아 시라쿠사의 수학자로 각종 무기를 개발해 조국을 지키다 목숨을 바친 아르키메데스를 흠모하면서 수학에 흥미를 가졌다. 부유한 은행가였던 제르맹의 아버지는 ‘여자는 숫자에 밝아서는 안 된다’는 사회통념과 ‘수학을 해서는 가난하다’는 등의 이유로 딸이 수학 공부하는 것을 반대했다. 하지만 그는 부모 몰래 책과 촛불을 감추고 밤에 다락방에서 수학 공부를 하면서 부모를 설복시켰다고 한다.
동아일보는 최근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부터 19세기 프랑스 에바리스트 갈루아까지 10회에 걸쳐 ‘수학의 고향을 찾아서’ 시리즈를 게재했다. 위대한 수학자들이 남긴 흔적을 찾아다니며 수학적 업적이 인류 역사에 남긴 영향 등을 소개했다. 수학 문외한인 기자가 페르마 편(5월 2일)에서 소수에 ‘1’을 포함한 것 빼고는 큰 오류가 없었던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뉴턴을 ‘만유인력을 발견하고 미적분학을 창시한’ 과학자 정도로만 알고 있던 기자는 그의 성장 과정을 알게 된 후에는 약 300년 전에 살았던 뉴턴에게 매우 친밀함을 느끼고 그의 학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우리 수학 교육에는 왜 ‘수학자’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차가운 수와 수학 뒤에 있는 수학자를 알게 되면 수학적 재능이 있는 학생은 최고의 수학자들을 모델로 삼아 재능과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고, 기자처럼 재능이 부족한 학생은 수학에 더욱 흥미와 애착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럴 때 한국의 수학 수준이 더욱 높아져 수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필즈 메달(Fields Medal)’ 수상자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만 40세 미만에게 주는 이 상은 1936년 노르웨이 오슬로대회 이후 50명이 받았는데 아시아에서는 일본인 3명, 중국인 1명만이 수상했다.
수학 교육 올림픽인 국제수학교육대회(ICME)가 다음 달 8일부터 15일까지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린다. ICME의 공동위원장인 한국교원대 신현용 교수(수학교육과)는 “세계 수학계가 공인하는 한국의 수학 수준은 약 12위인데 이는 한국의 국력 순위와 비슷하다”며 “수학 수준이 곧 국력”이라고 말했다. 수학자의 체취를 담아 영감과 감동을 심어주는 수학 교육을 통해 수학 실력과 국력을 높이는 방향을 찾아보겠다는 수학자들의 다짐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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