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해 금융 거래를 한다. 은행 통장을 개설할 때도 도장(인장)을 찍지 않고 사인을 하면 된다. 도장이란 개인이나 단체의 이름을 문서에 찍어 그 책임과 권위를 증명하는 도구다. 도장은 오랫동안 계약서에 꼭 필요한 인증 효과를 발휘해왔는데, 이제 그 위력도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서양 문화에는 없는 도장이 귀하신 몸 대우를 받던 시절도 있었다.
벽화당 광고(매일신보 1913년 4월 24일)는 지면의 중심에 도장포 사진을 배치한 다음, 사진의 오른쪽에서 아래쪽을 거쳐 왼쪽으로 카피를 둘러싸는 특이한 레이아웃을 썼다. 보디카피는 다음과 같다. “여보게 도장을 어디셔 싸게 잘 색이나(새기나), 경성 종로 벽화당(碧和堂)이지, 갑두(값도) 싼가, 아무렴 염가 호품(好品)은 벽화당이지, (중략) 조각사가 누구신가, 경성에 잇지방(いちばん·으뜸) 되난 김학연 씨라네, (중략) 외방(外方·지방) 주문은 더욱 신속 수응(酬應)한다데. 그러면 달음박질 우편국으로 주문서 붓치러 가겟네. 미나상 사요나라(みなさん さよなら·여러분 안녕히) 갓치 가셰(같이 가세) 나도 가겟네, 나도 가네, 나도 가네.”
도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건국 이후 관공서의 필요에 따라 자신을 입증하는 필수도구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감도장이다. 이 광고에서는 싼값에 좋은 도장을 새길 수 있으며, 지방 주문에도 신속히 응한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요즘 광고에서 카피에 영어를 섞어 쓰듯, 이 광고에서도 일본어를 섞어 쓰고 있다. 다들 같이 가보자며 군중심리를 부추기는 설득 전략이 인상적이다.
도장은 오랜 세월 주민등록증보다 귀하신 몸이었는데, 이제 처지가 달라졌다. 2001년 인장공예 1호 명장이 된 최병훈 선생의 작품처럼, 도장은 앞으로 장인의 예술품 정도로 명맥을 이어갈 것인가. 얼굴이 사진처럼 찍히는 포토 도장처럼, 재미있는 에피소드 도구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중국인장·휘날리는 베이징(中國印·舞動的北京)’이라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휘장처럼 ‘상징’으로 활용될 것인가. 공인인증서로 금융거래를 하는 시대에 도장의 내일을 생각해본다. 사물도 사람처럼 타고난 운명이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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