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사태와 소위 ‘종북의원’의 거취에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던 지난 몇 주 동안 여러 곳을 다녀왔다. 오랜 군부독재와 국제제재 끝에 개혁·개방 노선을 취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미얀마를 방문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현장을 다녀왔고,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도 참석했다. 학생들과 강화도와 판문점 등 안보 현장을 답사하기도 했다.
작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선거정국이 열린 이후 4월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날 때까지 필자는 잠을 설쳤다. 제1야당 민주통합당이 야권연대를 추구하면서 지난 두 정부에서 여당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급진적인 외교안보 정책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철회를 주장하고 핵안보정상회의에 반대하며 급기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까지 주장하고 나왔던 것이다.
그 같은 극단적 입장이 선거정치 과정을 거치면서 증폭되어 국민의 안보관에 혼란을 초래하고 국론을 분열시켜 일관성과 전략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외교정책의 수행에 부담을 줄 것을 우려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처럼 무리한 입장을 취한 야당의 계산법이 궁금하기도 했다. 야권연대로 얻을 것으로 생각한 표와 급진적 외교안보 노선으로 잃을지 모를 표를 따진 결과 전자가 더 크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누구보다 표심에 민감한 이들이 생각하는 국민의 안보관이 과연 그러한지 궁금하고 또 걱정됐다. ‘종북의원’ 거취에 국민들 관심
선거 결과 그 같은 우려는 기우임이 드러났다. 정권 말기에 치러져 압승이 예상됐던 선거에서 야당은 패배했다. 예상되는 압승에 미리 취한 야당의 오만과 더불어 바로 그 급진적 입장이 발목을 잡았다. 우리 국민은 야당이 생각한 것보다, 또 필자가 우려했던 것보다 현명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 논란은 원래 대형 국책사업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이익의 갈등에서 시작됐다. 거기에 ‘평화의 섬’ 제주와 ‘군사기지’ 사이의 부조화에 주목한 평화운동가들이 개입하면서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보의 어젠다로 둔갑하면서 환경론자와 반미론자 등이 가세했고, 선거정국에서 ‘진보의 정체성’ 문제로 부각되면서 전국적인 현안이 됐다.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절차상의 하자나 ‘구럼비 바위’와 같은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 불과하니 큰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반대론의 근거로 제기되는 평화주의의 순진함과 국제정치 논리의 한심함이다.
‘평화의 섬에 군사기지가 웬 말이냐’라는 주장은 평화와 군사는 양립할 수 없다는 평화주의식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모든 나라가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싫어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보다 권력을 우선시하는 사람과 나라도 있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그리고 바로 북한이 그런 나라라는 것은 더욱 불편한 진실이다. 판문점과 땅굴을 답사하면서 다시 확인했다.
그런 사람과 나라가 있는 한 평화는 강한 힘과 안보를 통해서만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지배적인 안보·평화 논리다. 따라서 평화주의를 근거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순진한 주장이다. 그런데 순진함을 넘어 한심한 주장이 있다. 바로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기지로 사용돼 중국을 자극하고 나아가 미중 패권전쟁의 단초를 제공하니 건설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주 해군기지를 우리의 뜻과 무관하게 미국이 사용한다는 생각이나, 중국을 자극해서 좋을 일이 없다는 생각은 참으로 한심한 사대주의적 발상이다. 강대국들이 서로 싸울지 모르니 우리의 무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발상은 땅에 머리를 박고 매를 외면하는 꿩처럼 한심한 패배주의적 발상이다.
무엇보다 한심한 것은 미중 패권전쟁론이다. 미국과 중국이 미래에 싸운다고 누가 말했는가? 그 싸움을 말리려고 오늘 우리 해군기지 건설을 포기하면 미국인들이나 중국인들이 고마워할 것인가, 기특해할 것인가, 아니면 한심해할 것인가? 미중 간의 전쟁이 남북 간의 전쟁보다 가능성이 높은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들어가고 나오면서 여전한 군사적 대치 상태에 마음을 졸였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쪽의 헐벗은 산을 보면서, 도라산역에서 평양과 서울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면서 미얀마에서 보았던, 가난하지만 희망에 찬 얼굴들을 떠올렸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성세 되새겨
평소 필자는 스스로 복이 많다고 말하곤 한다. 미국이 지원한 옥수수죽으로 점심을 때우던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녀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을 지켜봤으며 이제 아마 세종대왕 치세 이후 민족 최고의 성세기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반만년 역사 속에 이 같은 복을 누렸을 선조가 얼마나 될까? 민족의 다른 반쪽은 언제나 이 성세에 동참할까?
현충일 아침 아직 정리가 제대로 안 돼 어수선한 이삿짐을 뒤져 태극기를 찾아 달았다. 조기로 게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성세의 뿌리를 생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