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이 도박 파문을 계기로 전근대적 종단 운영체계를 고쳐 사찰의 재정 관리를 출가 승려가 아니라 재가(在家) 신도에게 맡긴다. 도박 폭로의 원인이 된 선거 시비를 없애기 위해 주지 등 소임(所任) 승려의 선출제도를 정비하고 승려가 준수할 청규(淸規)를 현대 사회에 맞게 제정할 계획이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어제 밝힌 종단 쇄신 계획은 출발에 불과하다. 약속한 대로 제도를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조계종의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1994년 종단 개혁 이래 가장 높았다. 일부 승려의 일탈이 있었지만 대부분 승려는 수행에 정진하며 깨어 있었다. 형안(炯眼)의 선승들이 들고 일어났고 원로 스님들도 물러나 있지만은 않았다. 이에 자승 스님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응답했으나 불자는 물론이고 국민이 보기엔 미흡하다. 종단 지도부는 기대에 걸맞은 개혁을 이뤄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자승 스님은 2001년 강남 룸살롱 출입에 대해 “10여 년 전 있었던 부적절한 일에 대해서는 향후 종단의 종헌종법 절차에 따라 종도들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규명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술자리 후 잠자리까지 있었다는 일각의 의혹에 대해 “그런 잘못은 결코 없었다”고 부인했다. 자승 스님이 본인 입으로 룸살롱 출입은 부적절한 일이었다고 고백한 것도,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성관계 의혹을 부인한 것도 처음이다. 다시는 의혹이 일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사건의 진상이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쇄신책에는 불교계의 고질적인 정치권 유착에 대한 자성(自省)은 포함되지 않았다. 자승 스님과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은 이명박 정권에서 정치권 여야의 대리인인 것처럼 갈등을 빚었다. 총무원의 권력을 쥔 측이나, 밖으로 도는 측이나 모두 10여 년 전 그 룸살롱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 외부에 비친 조계종의 부끄러운 초상이다. ‘닭 벼슬만 못한 게 중 벼슬’이라는 절집의 오랜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5일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가 개최한 사부대중 모임에서 한 불자는 “2010년 불교계가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반발해 정부 및 여당 관계자 출입금지 푯말을 세우고 지난해 예산을 재배정하자 푯말을 치우는 모습을 보면서 슬픈 생각이 들었다”고 비판했다. 정부 예산을 따오는 일이 종단의 중대사가 되고 정권은 그런 예산으로 종단을 길들이는 일이 앞으로는 없어야 한다. 종교는 종교의 길을 가고, 정치는 정치의 길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