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만리장성은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이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장대한 산성(山城)이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에는 허베이 성의 산하이관, 서쪽 끝에는 간쑤 성의 자위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전체 길이는 6300여 km라는 것이 중국 학계의 정설이었다. 중국 정부는 2009년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압록강 하구에 있는 후산산성으로 수정하면서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8851km라고 주장했다. 그제 중국 국가문물국은 총길이를 다시 2만1196km로 확대해 발표했다. 4년 사이에 3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만리장성이라는 명칭도 ‘4만리장성’(중국의 1리는 500m)으로 바꿔야 할 판이다.
이번 발표에서 중국 정부는 늘어난 만리장성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명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거 고구려 영토였던 지린 성과 헤이룽장 성에서도 만리장성 유적이 발견됐다고 밝혀 고구려와 발해의 산성들이 포함된 것이 확실시된다. 중국이 3년 전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주장했던 후산산성은 고구려가 세운 박작성의 중국 이름이다. 서기 648년 고구려 장수 소부손이 당나라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낸 곳으로 역사 기록에 나와 있다. 중국이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 세웠던 만리장성 안에 적대국이었던 고구려가 중국에 대항해 쌓은 산성을 포함시키고 총길이를 고무줄처럼 늘인 것은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될 역사왜곡이다.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고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강행해 한국 국민의 강한 반감을 샀다. 지난해 말 중국중앙(CC)TV는 다큐멘터리 ‘창바이산(백두산)’에서 고구려 유민이 세운 발해를 말갈족이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백두산을 중국 소수민족의 영산으로 묘사했다. 이번 발표는 중국이 벌여온 역사왜곡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하다. 만리장성이라는 문화유산을 통해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는 여러 민족이 역사적 동일체였음을 강조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누가 봐도 허구임이 바로 드러나는 이번 발표는 언론과 학술적 연구의 자유가 제대로 작동하는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문적 근거를 갖고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할 역사 편찬에 ‘공정’이나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도 역사와 관련된 한국과 중국 사이의 현안에서 정확한 사실이 반영되고 역사왜곡 문제가 양국 관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외교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