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이 늘어나면서 관람객도 증가하고 있지만, 여러 미술관에서 비슷비슷한 전시회를 한다면 곤혹스러울 것이다. 손님들이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다른 곳에서 봤던 것을 여기서도 본다’고 볼멘소리를 한다면 어떨까. 그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대략 난감해할 수밖에. 전시의 핵심은 차별화된 기획력이다. 전문 미술관의 사례를 살펴보자.
조선금은미술관 광고(매일신보 1913년 1월 1일)는 미술관 이름을 헤드라인으로 썼다. 소나무 가지에 네 장의 사진을 매달아 미술관의 규모와 특성을 보여준다. 즉, 제품 진열소 사진, 직공 근무실황 사진, 제품 진열대 사진, 제품 공장소(工匠所·공방)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비주얼 위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카피 위주의 광고가 그 무렵 보편적이었던 데에 비춰보면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시각 원리를 앞서 시도했던 셈이다. “외방(外方·서울 이외의 지방) 주문에 대하야난(대해서는) 특별 할인하야 인환(引換) 대금(代金)함” 정도로 적은 카피 분량이다.
신년호에 전면으로 낸 이 광고는 금은 전문 미술관을 강조했다. 조선금은미술관은 서울 장교 북천변에 제품 공장이, 서울 종로 이문동에 제품 판매소가 있었으며, 이상필이 대표를 맡아 회사조합의 형태로 운영했다. 요즈음 미술관의 개념과는 달리 금은 세공품 조합의 형태였지만 아무렴 어떠랴. 미술관 개념이 낯선 시절에 금은 미술관이라고 함으로써 다른 미술관이나 상점과 구별되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다. 즉, 미술관의 전문 브랜드화를 시도했던 셈이다.
지금 우리 곁에 미술관이 많지만 브랜드 자산을 확보한 미술관은 많지 않은 듯하다. 수채화는 좋아해도 유화는 싫어하는 사람들은 수채화만 전시하는 미술관을 찾을 터. 사진 전문 미술관, 근현대 시각문화 전문 미술관, 건축 전문 미술관 등등. ‘진경시대(眞景時代) 회화대전’을 성황리에 마친 간송미술관 역시 전문화된 브랜드 파워가 탄탄하다. 지금, 일민미술관에서는 ‘고백: 광고와 미술, 대중’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광고 120년의 흐름을 톺아볼 수 있는 기회. 동시대적 시각문화를 탐구하는 전문 미술관 사례의 하나다. 어떤 미술관 하면 뭐가 떠오르는 미술관의 전문 브랜드화 전략이 정말 중요해졌다. 미술관 수가 늘어날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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