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고은은 ‘만인보’에서 ‘모진 턱이야 적막하지만/그 머리는 빠른 팽이라’라고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에 대해 읊었다. 이해찬은 “새누리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표를 뽑아달라”며 경선에 나섰고, 이 말이 맞는지 알 순 없지만 결국 성공했다.
‘이해찬 세대’의 불행 기억하는가
나도 이해찬이 두렵다. 첫째는 모진 태도까지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 비상한 두뇌가 되레 대한민국의 발전에 장애가 될까봐서이고, 둘째는 자신은 언제나 옳다는 확신이 남길 파장 때문이다.
5년 전 이해찬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 주자 5명 중 하나로 MBC ‘100분 토론’에 나왔다. 한 시청자가 “나는 ‘이해찬 1세대’다. 뭐든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고 하셨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따지자 그는 당황했다. “아…당시는 대학입학전형에 면접도 넣고 논술도 넣어 다양화했는데….” 그래도 방송 중 박차고 나가지 않았으니 지금보다 착했던 것 같다.
이해찬 1세대는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이던 그가 1998년 대학 무시험전형 확대를 강조한 대입정책을 발표하면서 생긴 말이다. 대입에 성공했으면 02학번이 되는 이들 중 상당수는 그때부터 장관 말만 믿고 “공부 안 해도 된다!” 만세를 불렀다가 인생 첫 고비에서 쓴맛을 봤다.
‘단군 이래 최저 학력(學力)’이라는 지적이 빗발쳤다. 2007년 경제통상학회지에 “2002학년도 지니계수로 측정한 수능 성적이 전년도 대비 10% 이상 급격히 감소해 하향평준화했다”는 논문까지 실렸다. 그러나 이해찬은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다. 노무현 정부 총리 시절 “교육부 장관 때 가장 일을 잘했다”고 자랑했으니, 더 잘했다면 나라가 뒤집힐 뻔했다.
더 큰 문제는 14년 전 정책 오류가 지금까지 나라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해찬 세대의 체험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키고, 반칙과 기회주의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는 연구도 나왔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같은 금 모으기 운동이 또 나오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과외 붐을 재연시킨 이해찬이 대치동 신화의 불을 붙였다”고 할 만큼 아파트값 폭등에 양극화와 부의 대물림도 심해졌다. 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최근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2003년 이후 인적자본 성장세가 본격적으로 둔화됐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물론 우리 교육정책의 문제와 이로 인한 정치 사회 경제적 악영향까지 모든 책임을 이해찬에게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지난 정부의 문제를 포함해 민주당 총선 실패나 이번 경선에서의 아슬아슬한 승리까지도 자기는 잘못이 하나도 없다는 그의 무오류성(無誤謬性)에 대한 오만이 더 큰 위험을 부를까 겁난다. 북의 김정은 집단에는 산타클로스 같으면서, 자기편 아닌 모든 국민을 적으로 모는 적의(敵意)의 리더십(여기 리더십이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지만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2004년에 한 말이다)도 두렵기 짝이 없다. 종북 정치인에는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유독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데는 분하기까지 하다.
세번째 형님 ‘해찬대군’ 나온다면
이해찬은 ‘호인, 인덕 좋은 사람, 덕장(德將)이 아니라고 해서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다’고 자서전 ‘청양 이 면장 댁 셋째 아들’에 썼다. 일 잘하는 사람이 욕도 먹는 것이고, 모든 추문은 선공후사(先公後私)를 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며 자신의 능력과 공공마인드를 자부했다.
그가 호인이 아닌 건 분명하지만 일을 잘했다는 점엔 동의하기 어렵다. 2006년 3·1절 골프파동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여론조사에 따르면 직무수행 부정적 평가(54.8%)가 긍정적 평가(32.9%)보다 훨씬 높다(한국사회여론연구소). 선거기획에 관여한 1996년 총선과 2007년 대선 및 2010년 서울시장 선거,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으로 뛴 올해 총선에서 실패했는데 자타가 공인하는 전략통이라는 것도 믿기 힘들다. 철도 파업 첫날인 3·1절에 골프를 치기 전, 강원도 산불(2005년 4월 5일) 남부지방 집중호우(그해 7월 2일) 보고를 받고도 골프를 쳐 물의를 빚었는데 선공후사라니, 이해찬에게는 골프‘공’이 우선인 모양이다.
그런데도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난 건 김대중 노무현 두 주군의 마음에 쏙 들게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 그가 잘 보여야 할 윗사람은 없다. 오히려 이해찬이 “2012년 문재인, 2017년 김두관”이라고 조정하는 판이니, 대통령 되고 싶으면 그에게 잘 보여야 한다. 여기에 안철수까지 가세해 공동정부가 탄생할 경우 국민은 두 대통령의 형님에 이어 세 번째로 ‘해찬대군’ 형님을 모시며 시대를 거꾸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야당대표가 제 입으로 타도를 외쳤던 정치인들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무엇보다 입으로는 소통과 통합을 강조하면서 ‘강한 리더십’만 휘두르는 그 변함없음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이해찬 스트레스가 끔찍한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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