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완전국민경선과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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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2일 2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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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완전국민경선(오픈프라이머리)이 유권자의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기보다는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그럼에도 새누리당 박근혜 전 위원장은 대통령후보 경선 룰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명분과는 달리 허구 많은 제도

완전국민경선은 당원제한경선(클로즈드프라이머리)과 달리 당원이 아닌 국민에게도 투표권을 준다. 2007년 대선 때 대통합민주신당(현 민주통합당의 전신)이 이 방식으로 정동영 후보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역과 세대 등의 유권자 분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묻지 마’ 조직 동원과 불법 시비로 얼룩졌다. 당시 정 후보는 ‘정동원(動員)’으로까지 불렸다. 이런 오픈프라이머리보다는 ‘신뢰도 높은 샘플’로 사회과학적 조사방법론에 충실한 여론조사를 하는 편이 비용은 덜 들이면서 대표성은 더 높일 수 있다.

지지 정당 사전등록도 없이 껍데기만 미국 흉내를 내는 불완전한 완전국민경선은 반대세력의 조직적인 대규모 역선택 투표로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런 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계획적 다발적으로 부정을 획책하고, 경선 후에 이를 드러내 확정된 후보의 자격 시비를 유도할 수도 있다. 미국과 달리 이념성향이 강한 정당들이 대립하는 유럽 국가들은 완전국민경선을 잘 하지 않는다.

오픈프라이머리를 해야 흥행이 된다는 주장에도 허점이 있다. 5년 전 대통합민주신당은 완전국민경선을 했지만 흥행에 실패했고 본선에서 531만 표차로 대패했다. 반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2:3:3:2(당 대의원 투표 20%, 일반당원 투표 30%, 일반국민 투표 30%, 여론조사 20%) 방식으로 경선했지만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의 용호상박이 흥행성을 높였다.

지금 새누리당 경선의 흥행성이 떨어지는 것은 박근혜 대항마들이 너무 뜨지 않는 탓이 크다. 김문수 지사, 정몽준 이재오 의원 등 비박 주자들은 당이 박근혜 사당(私黨)이 됐다고 개탄하지만 이것이 박근혜만의 책임은 아니다. 김·정·이 같은 인물들이 자신의 매력과 아우라로 지지율 10%만 얻었더라면 당이 박근혜 사당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들의 낮은 지지율을 당의 구조적 문제 탓으로 돌릴 일도 아니다.

지난번 이명박 후보는 당내 기반이 약했음에도 ‘당심 5 대 민심 5’ 방식의 경선에서 끝내 이겼다. 정치판이야말로 둥글다면 둥글다. 경선 룰만 트집 잡아서는 정·이·김 세 사람 모습이 더 초라해질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 측도 오픈프라이머리가 정당정치를 훼손한다는 주장만 앞세울 일은 아니다. 새누리당을 진성당원 중심의 정당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 오늘날 세계의 정당들은 이념적 계급적 경계선이 많이 허물어지면서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미국식 포괄정당(catch-all party)을 지향한다. 당원 못지않게 당 밖의 유권자를 중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적 후보결정도 당원만의 전당대회보다는 당 밖의 유권자를 많이 포함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1등은 정치력 발휘해야

대선후보 경선 방식이 꼭 오픈프라이머리여야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지금 새누리당이 ‘박심만 쳐다보는 정당’으로 각인되는 것은 문제다. 그가 국민 40, 50%의 지지를 얻는 대선 주자라 하더라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당의 민주성을 살려야 한다. 당이건 미래의 정부건 ‘박심’만이 통할 것이라는 국민인식이 굳어진다면 민심의 저항 역시 확산될 소지가 커진다. 반(反)새누리당 야권의 ‘독재 대 민주’ 프레임이 실체적 진실을 떠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국민은 지금 박 전 위원장이 경선 룰을 둘러싼 당 내분을 어떤 과정, 어떤 접근방식으로 해결하는지 그의 정치력을 지켜보고 있다. 갈등의 조정과 해결은 대통령이 떠안아야 할 소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선 룰 하나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국정수행능력을 의심받을 만하다. 그런 점에서 경선 룰 문제의 해결은 그 자체가 대선 본선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1 대 1 본선에서 이기려면 유효투표의 50%+알파를 얻어야 한다. 새누리당을 아우르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그럴진대 당 경선 룰 갈등조차 해소하지 못한다면 ‘원칙에 대한 신뢰’보다는 ‘정치력 빈곤에 대한 실망’이 민심을 관통할 수 있다.

정치인은 법률가와 다르다. 타협을 무원칙으로 간주해선 안 된다. 경쟁과 갈등이 불가피한 현실 속에서 원칙이란 것도 쌍방향의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구현해야 한다.

국민이야말로 정치 10단이다. 황우여 대표를 보며 박 전 위원장의 정치력과 지도자 자질을 가늠한다. 박 전 위원장은 2002년 한나라당 경선 때 민심 반영비율 확대와 집단지도체제 도입 등을 요구하다 좌절되자 탈당한 전력이 있다. 그런 점에서도 이·김·정 같은 비박 주자들에 대해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시간이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완전국민경선#박근혜#새누리당#대선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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