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검찰 간부는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 거처로 검토했던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사저 터 매입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를 보고 난감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검찰은 결속력이 어느 조직 못지않게 강한 편이지만 최근 잇따라 발표한 수사결과에 대해선 내부에서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같은 식구임에도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다. 조사결과를 발표하자마자 외부에서 특별검사나 국정조사라는 말이 나오는데도 검찰 내부에선 반발은커녕 이미 예상했다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서울중앙지검이 8일 발표한 ‘내곡동 사저 터 매입 관련 고발사건’을 보자. 수사결과의 요지는 사저 터를 매입하면서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가 6억900만 원의 이득을 본 것은 맞지만 배임죄를 적용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배임 의도를 찾기 어려워 형사처벌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다. 땅 계약서와 등기 서류에 따르면 청와대 경호처와 시형 씨가 849m²를 각각 24억3200만 원과 11억2000만 원씩 내고 공동 매입했지만 등기 지분은 시형 씨가 463m², 경호처는 386m²로 돼 있다. 경호처는 돈은 2배 이상 내고 땅은 되레 적게 가져간 셈이다.
땅을 싸게 사려고 시형 씨 명의로 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 사저 터라는 사실이 알려져 매도인이 가격을 높게 부를 것을 우려했다면 경호처 말단 직원 이름으로 하면 됐지 굳이 대통령 아들 명의를 빌릴 이유가 있었을까. 사건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세금 한 푼 안 내고 고스란히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던 것 아닌가라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항상 변호인을 대동한 채 조사받고 의혹을 극력 부인하는데 어떻게 입증하나. 고문할 수 있는 세상도 아니고….”
수사 관계자의 항변이다. 검찰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을 테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제 유행처럼 돼버린 ‘서면조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는 일반인도 원하면 모두 이렇게 해줄 것인가.
13일 발표한 민간인 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도 마찬가지다. 500건의 사찰 의혹 가운데 검찰이 1, 2차 수사를 통해 밝혀낸 불법 사례는 5건뿐이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부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정치인, 고위 관료, 재벌 총수가 줄줄이 동향 파악을 당한 것으로 새로 확인됐지만 검찰은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 최종 지시자이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등 윗선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아무리 ‘왕 차관’이라지만 과연 국무차장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법조계 주변에서는 권재진 현 법무부 장관이 ‘민간인 사찰 사건’이 진행될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었는데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권 장관은 2009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민정수석으로 근무했다. 내곡동 사저 터를 사들인 때도 지난해 5월이다. 검찰이 ‘법률적 판단’에 앞서 ‘정무적 판단’에 의존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판사는 재판에 임할 때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라는 법언(法諺)을 가슴에 되새긴다고 한다. 검사 역시 수사에 임할 때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부패나 외압이 없다면 정의가 무너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지난해 8월 12일 취임하면서 “정의가 강물처럼 넘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국민은 이 약속을 어떻게 평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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