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개그콘서트는 국내에서 이미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다. 1999년 대학로 코미디 무대를 TV로 옮겨온 이 프로그램은 10년 넘게 장수하며 상당한 사회적 파급력을 떨치고 있다. 평균 시청률은 20%를 넘나든지 오래며, 코너 유행어를 모르면 시대에 뒤처졌단 소리도 듣는다. 영향력이 얼마나 크면 국회의원이 고소까지 하겠다고 나섰겠는가.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동 사회에도 ‘개콘’이 있다. 이름도 거창한 ‘스탠드 업 코미디 카타르(SUCQ)’다. 영어로 성적 뉘앙스가 강한 ‘suck’으로 불리길 바라는 그들은 10명 내외 단원이 도하를 근거지로 중동 국가를 돌며 공연을 벌인다. 20대 중동계 미국인과 30대 비(非)이슬람 여성, 팔레스타인 15세 소년 등 다양한 출신들이 모인 이 코미디 극단은 그 지역 기준으론 꽤 비싼 관람료(8달러)를 받는데도 항상 손님들이 줄을 선다.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따르면 이들의 인기는 절묘하게도 ‘아랍의 봄’ 영향이 컸다. 사실 이들은 유럽 코미디 페스티벌에 자주 초청받아 인지도가 높았지만, 중동에선 텅 빈 관객석 앞에서 공연하기 일쑤였다. 극장식 코미디 자체가 그곳 사람들에겐 익숙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아랍의 봄이 이슬람 사회를 뒤흔든 뒤 혁명이 비켜간 중동 국가들 내부에서도 조금씩 균열이 생겼다. 서구문화인 스탠드 업 개그에 관심이 생겨났고, 제도권 TV에선 볼 수 없던 자유분방한 SUCQ의 농담이 입소문을 탔다. ‘하랄 비랄(깔끔한 비랄 씨)’이란 예명을 쓰는 극단 대표는 “이집트 리비아 등에서 퍼진 자유를 향한 목마름이 이곳의 경직된 문화에도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역설적이게도 SUCQ의 인기는 현재 그들의 발목을 옥죄는 족쇄가 되고 있다. 관심이 늘다 보니 단원인 오마르 씨의 표현대로 “하루 종일 뉴스만 보는 사람들”도 이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정부 관계자나 종교인, 엄숙한 시민단체들이 공연장을 찾아 모니터링을 한다. 올해 초 한 단원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나이트클럽과 모스크(이슬람 사원)의 공통분모를 나열하는 개그를 했다가 종교계의 항의로 1년간 입국금지 명령을 받았다. SUCQ 측은 “더 큰 분란을 피하기 위해” 농담 내용을 밝히길 꺼렸다.
이들에게 서슬 퍼런 ‘금기’ 딱지가 붙은 건 모스크뿐만이 아니다. 왕족이나 정부 고위층, 종교계 지도자는 입에 올려서도 안 된다. 꾸란은 단 한 줄도 코미디 소재로 쓸 수 없다. 성적 농담도 은유적이어야 하지 직설적인 표현은 피해야 한다. 도대체가 애매모호한 기준도 있다. 레이디 가가는 언급할 수 있어도 마돈나는 안 된다. “더 퇴폐적이라서”라는 게 이유다.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는 조롱해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불허 대상이다. “살아 있어서”란다.
이러자 SUCQ는 최근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중동 코미디의 선구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다져왔지만 유럽으로 떠나겠다는 단원이 나오고 있다. 비랄 씨도 최근 한 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코미디를 관둘까 고민 중이다. “언제부터인가 가족 얘기만 개그 소재로 삼는 자신이 싫어서”란다. 예나 지금이나 메마른 사막 땅에서 꽃을 피우기란 이리도 어렵다. 설령 ‘웃음꽃’이라 해도. 하긴 어디 사막만 그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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