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43>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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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부살이 가능하면 거기가 곧 마을… 삶의 불안 없어

마하트마 간디. 비폭력의 상징이자 위대한 영혼으로 추앙받는 이가 설파하는 진리는 극히 단순하다. 스와라지, 자치가 곧 그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 힘으로 노동하고, 그 노동의 힘으로 정신적으로 자립하고, 그 자립하는 정신들이 상호호혜의 관계를 맺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이상적인 꿈. 그걸 위해서는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나 대량 생산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오히려 다양한 수공업들이 리바이벌되는 작은 ‘마을들’의 연합. 간디가 꿈꾼 인도의 미래였다.”(‘위대한 영혼 마하트마 간디’)

바야흐로 글로벌리즘의 시대다. 동의하든 않든 전 지구가 하나로 연결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이 흐름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나는 세계가 거대한 제국으로 흡수 통합되는 것.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예견한 ‘디스토피아’가 그것이다. 또 하나는 국경과 인종, 문화와 풍속, 가족과 혈연의 경계를 넘어 마을 단위로 헤쳐모여 하는 것. 작은 마을들의 연합으로서의 지구촌. 간디의 비전과 지혜를 되새겨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을은 공동체의 최소 단위다. 마을을 움직이는 동력은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다. 자치와 자율이다. 전자가 경제적 자립에 관한 것이라면 후자는 윤리적 주권에 대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구현되는 방식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 하나의 사례가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연구실인 ‘남산강학원&감이당’이 그것이다. 연구실에는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공존한다. 출신 지역도 제주도, 문경, 청주, 춘천 등 전국적이다. 이들은 숙식을 연구실에서 해결한다. 연구실 주방의 밥값은 2000원이다. 요리는 돌아가면서 한다. 2000원으로 어떻게 유지되느냐고? 그 비밀은 ‘선물의 경제학’에 있다. 전국 각지에서 쌀과 과일, 반찬 등이 무상으로 들어온다. ‘사람과 공부가 있는 곳엔 밥이 온다’는 이치를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다음으로 숙식은 다양한 방식의 공동주택으로 해결한다. 9인 이상이 함께 사는 기숙사형 공동주택도 있고, 3∼4인이 함께 거주하는 공동주택도 있고, 혹은 가까운 고시원에 개별공간을 얻는 방식도 있다. 집은 최소한의 휴식만 가능하면 된다. 공부하고 활동하고 노는 것들이 모두 연구실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숙박에 드는 비용은 16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 이렇게 해서 연구실 식구들은 서울 도심의 한복판에서 1달 40만 원에 의식주를 해결한다.

그 비용도 스스로 해결한다. 자립의 토대는 고전과 글쓰기다. 고전의 텃밭을 일궈 글을 쓰고 그것을 세상에 소통시킴으로써 경제 활동을 한다. 부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돈 때문에 삶이 소외되는 경로를 밟지는 않는다. 아는 만큼 글을 쓰고 버는 만큼 누리면 된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렇게 살면 불안하지 않느냐고? 놀랍게도 전혀 불안하지 않다. 정규직들은 빚과 불안을 안고 살지만, 우리 연구실의 백수들은 빚도, 불안도 없다. 이게 더부살이의 힘이다. 더부살이가 가능하면 거기가 곧 마을이다. 우리는 믿는다. 마하트마 간디가 설파했듯이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진리를.

고미숙 고전평론가
#간디#스와라지#글로벌리즘#자립#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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