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참수리호 비극, 김동신 박지원 임동원 책임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9일 03시 00분


‘발포 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다.’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호를 공격한 북한 경비정이 교전 이틀 전 상급부대에 보고한 특수정보(SI) 15자(字)다. 월간조선 7월호는 우리 해군이 통신감청을 통해 북한 경비정과 상급부대의 관련 교신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리 군이 북한의 도발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아 해군 6명이 희생되고 참수리호가 침몰했다는 얘기가 된다.

서해 NLL에서 무력 충돌의 위험성을 알리는 첩보 보고가 묵살됐다는 주장은 이미 2002년 10월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당시 통신감청을 담당했던 5679부대의 한철용 소장은 2년 전 펴낸 회고록에서 “북의 도발 16일 전과 이틀 전에 포(砲) 이름과 ‘발포’ 용어가 두 차례 이상 언급된 특이 징후가 있음을 보고했지만 위에서 묵살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도 군 수뇌부가 도발 징후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한 예비역 소장의 발언과 월간조선의 보도를 종합하면 북한의 공격 계획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했다.

그러나 김대중(DJ) 정부는 제2연평해전을 ‘우발적 사건’으로 평가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DJ는 ‘햇볕정책’에 박차를 가하면서 남북 관계를 교류협력 분위기로 몰아가려 했다. ‘확전 금지’를 최고의 군령(軍令)으로 정한 교전수칙을 만들어 군의 손발을 묶다시피 한 것도 DJ 정부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핑계 삼아 남북 간 긴장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의 도발 징후를 의도적으로 묵살했을 가능성도 있다.

총괄적 책임은 고인(故人)이 된 DJ의 몫이지만 김동신 당시 국방부 장관, 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 임동원 대통령외교안보특보, 신건 국가정보원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김 전 장관은 아직도 ‘합참이 우발적 도발로 평가했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DJ 정부는 제2연평해전 한 달 뒤인 2002년 7월 북한이 쌍방의 책임을 거론하며 ‘서해 해상에서 발생한 우발적 무력충돌 사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전화통지문을 보내자 “명백한 사과로 간주한다”며 사건을 사실상 접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북한의 명백한 도발계획을 묵살해 비극을 초래했는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그래야 제2연평해전 10주기가 되는 29일 희생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면목이 설 수 있다.
#사설#참수리호#서해교전#제2 연평해전#대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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