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형삼]우주경쟁, 미-러 넘보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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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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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렸다. 한 달 뒤엔 개 한 마리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발사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소련보다 한 수 위라고 자부했던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신들은 더 좋은 로켓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더 좋은 컬러TV를 갖고 있다.” 당시 닉슨 미국 부통령은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을 향해 이렇게 빈정댔지만 많은 미국인은 ‘제2의 진주만 폭격’으로 받아들였다.

▷1961년 4월 소련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에 성공하자 충격은 공포로 변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가가린 사태’ 이틀 후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했다. 잔뜩 열 받은 대통령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미국인을 달에 착륙시킨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 순간부터 우주는 미-소 냉전시대의 체제 우월 선전장이 됐다. 미국은 400억 달러를 퍼부은 끝에 1969년 7월 20일 달에 첫발을 내딛고 구겨진 위신을 회복했다. 케네디 사후(死後) 6년, ‘1960년대의 끝’을 5개월 남짓 남겨둔 시점이었다.

▷1970년대 동서 냉전의 데탕트(긴장 완화) 훈풍은 우주에도 불었다. 1975년 7월 18일 미국의 아폴로 18호와 소련의 소유스 19호가 대서양 997km 상공에서 도킹했다. 아폴로 비행사들이 소유스로 넘어가 국기(國旗)를 교환하고 식사도 나눠 먹었다. 두 나라가 소모적인 자존심 대결로 돈다발을 쏟아 붓는 대신 우주를 전 인류가 함께하는 협력과 평화의 장(場)으로 만들자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20년 후인 1995년 6월 미국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가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와 도킹하면서 마침내 우주에서도 냉전이 종식됐다.

▷중국의 네 번째 유인(有人) 우주선 선저우(神舟) 9호가 어제 자국의 실험용 우주정거장 톈궁(天宮) 1호와 도킹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유인·무인 우주 도킹 기술을 확보했다. 우주 기술은 전자 통신 소재 항공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가 크다. 미국과 러시아를 넘보는 수준으로 급성장한 중국의 우주 기술은 인류의 삶의 질을 한 차원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인가, 미국과의 가시적 국력 경쟁 도구가 되어 새로운 냉전시대를 열 것인가.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횡설수설#이형삼#선저우 9호#미중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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