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탈북자에게 폭언’ 외교부 풍토에 문제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0일 03시 00분


주(駐)태국 한국대사관 여직원들이 현지 수용소에 머무르는 탈북자들에게 폭언을 했다는 동아일보 보도 내용이 정부 합동조사단의 현지 조사에서 사실로 확인됐다. 정부는 현지 조사를 마친 뒤 “문제가 있다고 지목된 행정원들이 고성과 강압적 언사가 있었다는 점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본보 보도와 관련해 “우리가 문제의 여직원들로 지목된 사람들을 조사했는데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왜 탈북자 말만 토대로 기사를 쓰느냐”고 항변했었다. 해외 공관에서 심각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철저히 조사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하는 것이 정상적인 업무 처리일 것이다. 전화로 적당히 물어보고 제 식구 감싸기를 하려 했다면 외교부의 내부 기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외교부는 일단 문제의 행정원 2명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한국에 불러 추가 조사를 하기로 했다. 행정원들의 진술과 함께 폭언을 들었다는 탈북자들의 진술도 청취해 대사관 측의 잘못이 확인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문책해야 한다. 외교부는 공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태국 주재 대사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태국 대사관에서 문제가 불거졌지만 탈북자들에 대한 폭언을 포함한 강압적 언행은 다른 동남아 국가에 있는 공관에서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이 나오고 있다. 공관에 들어간 경우는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 중국 등지의 공관에서는 전화를 건 탈북자들에게 “세금 낸 적 있느냐”며 아예 구조요청을 거부했다는 사례도 적지 않다.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자에 대한 공관의 보호책임은 애초부터 없었던 셈이다.

탈북자들을 ‘쓰레기’라고 인식하는 탈북자 담당 공무원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정부가 아무리 탈북자 지원시스템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한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 탈북자 담당 공무원들은 목숨을 걸고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넌 탈북자들이 3800km나 떨어진 태국에 도착할 때까지 숱한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것을 상상이라도 해봤는가. 일반 국민의 눈에 상당수 외교관들은 자기들만의 특권 세계에 갇혀 있는 특수한 집단으로 비친다. 이제라도 탈북자를 포함한 재외국민을 진정으로 섬겨야 할 대상으로 여기도록 해외 공관원들에게 공복(公僕)의식을 높일 것을 촉구한다.
#탈북자#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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