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과 세종연구소를 통합해 미국의 헤리티지재단 같은 권위 있는 싱크탱크를 만들자는 논의가 무르익었다. 한경연은 경제, 세종연은 외교안보로 특화돼 있다. 또 한경연은 전경련의 영향권과 정치 바람에서, 세종연은 재원 부족에서 벗어날 수 있어 시너지 효과가 분명해 보였다. 박지원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전경련 관계자들을 불러 호통을 쳤다. “진보 연구원들 다 내쫓고 보수 연구기관 만들겠다는 거냐.” 그는 나가는 전경련 관계자들을 다시 불러 세웠다. “계속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재벌들을 청문회에 세울 것이다.” 통합은 무산됐다.
▷전경련이 한국규제학회와 19대 국회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한 모니터링을 한다는 양해각서(MOU)를 18일 체결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지나친 규제를 쏟아낼 것에 대비한 것이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가만있을 리 없다. 즉각 “전경련이 헌법을 짓밟고 있다”며 “경제민주화를 막는 오만방자한 쿠데타를 취소하지 않으면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놀란 전경련은 “의정 활동을 막을 의도는 없다”며 해명에 바쁘다.
▷박지원만큼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오래, 두루 누리는 이도 흔치 않다. 2년 전 81석의 의석으로도 전경련을 주저앉혔는데, 127석 의석수에 야권연대로 무장한 지금 전경련을 고꾸라뜨리지 못할 리 없다. 그러나 그가 알아야 할 일이 있다. 제대로 규제받지 않는 시장이 국민에게 피해를 주듯 제대로 견제받지 않는 권력도 큰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다. 특히 ‘약자’라는 미명 아래 책임지지 않고 휘두르는 야당 권력은 더 위험할 수 있다.
▷18대 국회에 제출된 규제법안 1986건 중 93%가 의원발의 법안으로 분석됐다. 각 부처와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거치는 정부 법안 같은 검증장치도 없다. 우리보다 의원입법 비중이 훨씬 낮은 독일도 지난해 의원입법 심사를 도입했다. 우리의 전경련 격인 프랑스 메데프의 로랑스 파리소 회장은 최근 대통령의 증세 방침에 “경제를 경직시켜 고립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지원한테 “전경련과 내부자와 다름없는 학회”라고 비난받은 규제학회 회원들은 이제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규제’에 나서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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