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제균]D-180,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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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2일 03시 00분


박제균 정치부장
박제균 정치부장
전조(前兆)가 있었다. 지난 총선이었다.

정치부 기자와 데스크로 적지 않은 총선과 대선을 치렀다. 그중에서도 지난 총선은 유별났다. ‘강간’ 따위의, 여느 총선 보도에선 등장할 수 없는 단어는 ‘양반’이었다. ‘××’ ‘×××’처럼 ‘×’라는 ‘가리개 부호’를 쓰지 않고선 도저히 활자화할 수 없는 막말이 난무했다. ‘나꼼수’와 김용민 후보가 촉발한 역대 최악의 ‘저질 총선’이었다.

총선이 부실 대선의 첫째 원인

총선 보도의 실무책임을 진 부장으로 숱한 저질 막말을 보도해놓고, 이제 와서 왜 그러느냐고? 나도 그런 보도를 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막말을 일삼는 그들이 일정한 정치적 파워를 갖는, 일종의 ‘정치현상’으로 부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정치현상으로 키운 건 우리 사회의 배설욕구 같은 저열함이었지만, 그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정치 현실이었다.

김용민 후보의 낙선으로 ‘저질 광풍’은 한풀 꺾였다. 많은 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더 엄청난 복병이 엄습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북한의 남침과 천안함 폭침을 부인하는, 혁명이란 ‘철 지난 유행어’가 모든 수단을 합리화하는, 그래서 선거의 민주절차는 깡그리 무시하는 주사파 종북세력의 국회 입성이었다. 막말 총선에 이은 종북세력의 국회 입성의 후폭풍까지…. 총선이 끝나도 끝난 게 아니었다.

오늘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18대 대선이 딱 180일 남았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신문들은 새누리당 당원 명부 유출사건 같은 ‘총선 설거지’ 기사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D-180일이 되도록 본격 대선가도에 돌입하지 못하는 첫 번째 원인은 총선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총선에 이어 8개월 만에 치르는 올해 대선은 졸속으로, 부실하게 치러질 제도적 한계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20년 전인 1992년에도 3월 하순에 총선, 12월 중순에 대선을 치렀다. 그때는 달랐다. 민자당은 김영삼, 민주당은 김대중, 국민당은 정주영이라는 부동의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총선을 치렀다. 총선이 곧 대선이었다. 각 당 모두 총선이 끝나자마자 대선으로 달려갔다. 이제 정당에 ‘주인’이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해의 제도적 문제점을 들여다볼 때가 됐다.

역대 대선을 돌아보자. D-180일은 주요 후보의 윤곽이 드러나 자질과 전력, 공약 검증에 본격 시동을 걸 때였다. 올해는 어떤가. 여야 모두 경선의 룰과 시기조차 정하지 못했다. ‘게임의 법칙’은 물론 플레이어조차 불투명하다. 이러니 검증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 부실 검증은 불을 보듯 뻔하다. 벌써부터 올해 대선이 역대 최악의 선거가 되리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세계 10대국가인 대한민국의 대선을 이렇게 치러선 안 된다.

이기려고만 하면 이길 수 없어

이는 이른바 ‘안무(安霧)’, 즉 ‘안철수 안개’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범야권 지지율 1위를 달리는 ‘장외 강자’가 링에 오를지조차 알 수 없도록 안개를 피우는데, 미리 링에 올라가 두들겨 맞으면서 전력을 노출할 바보는 없다.

하기야 안 원장에게만 책임을 돌릴 일은 아니다. 그가 안개를 피우는 것도, 야권이 그런 안 원장의 눈치를 보는 것도, 덩달아 여권 후보조차 미적거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어떻게든 이기면 된다’는, 일그러진 대선 역사의 산물이다. ‘3대 거짓말 사건’을 일으키든, 뭘 했든 이기면 모든 게 용서됐다. 지난 총선에서 ‘나꼼수’를 끌어들여 막말 저질판을 만든 것도, 종북세력과 야권연대를 감행한 것도 이런 ‘승리 이데올로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결과가 어땠나. 어떻게든 이기려고만 하면 이길 수 없다. 그것이 달라진 시대정신이다.

박제균 정치부장 phark@donga.com
#대선#총선#새누리당#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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