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안보 분야에서 ‘인게이지먼트(engagement)’라는 용어는 대체로 ‘관여’라고 번역하지만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전쟁 때에는 교전(交戰)을, 평상시에는 대화를 뜻한다. ‘햇볕 정책’이란 말로 더 유명한 김대중(DJ) 정부의 대북(對北) 포용정책이나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도 모두 관여 정책에 속한다.
▷DJ의 대북 정책이 못마땅했던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초기에 북한을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매파적 관여(hawkish engagement)’ 정책을 폈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지낸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가 만든 용어로 강력한 압박을 병행한 대북 협상론이었다. 한편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지낸 스티븐 보즈워스 플레처스쿨 학장은 ‘깐깐한 관여(tough engagement)’를 주창했다. 북한에 두 번이나 속은 경험 때문에 북한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전에는 절대 대규모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였지만 사실 그는 “대부분의 외교는 이른바 악행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을 가진 비둘기파였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관여 정책이 진화하는 과정이었다. 치밀한 사전 준비 없이 한국에 관여하게 된 미국은 1950년 미국의 동북아 방어선인 ‘애치슨라인’에서 한국을 제외함으로써 탈(脫)관여의 신호를 보냈다. 베트남전 실패 이후 집권한 지미 카터 행정부는 동맹의 ‘연루(entrapment)’ 위험성을 꺼려 주한미군 철수를 선언하면서 한국과 본격적인 이혼(離婚) 수속을 밟았던 적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정책을 총괄했던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차관은 외교안보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국방정책의 새로운 기조를 ‘전향적 관여(forward engagement)’로 규정했다. 국방예산 삭감에도 불구하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군기지에 미국의 국력을 전진배치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군사력에 동맹국이나 우방국이 무임승차하는 방식이 아니라 고통 분담의 호혜적 관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내년엔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신행정부가 출범한다. 중국의 부상과 불안정한 북한 관리방식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의 ‘관여’ 방향은 두 신행정부에 공통의 고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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