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기섭]영화 ‘건축학개론’ 인기는 ‘융합’과 ‘감성’의 합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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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3일 03시 00분


이기섭 한국산업기술 평가관리원장
이기섭 한국산업기술 평가관리원장
영화 ‘건축학개론’이 멜로 장르에선 넘기 힘들다는 관객 4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사실 제목만 들으면 ‘건축학개론’은 딱딱하기만 해서 재미없어 보인다. ‘건축’과 ‘개론’이라는 단어가 우리들 삶에 있어 재미와 친근함을 주기보다는 무관심과 지루함의 경험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나리오는 영화로 제작되기 전에는 10여 년간 충무로에서 외면 받으며 여기저기를 떠돌았다고 한다. 평범한 스토리로 묻혀버릴 뻔한 시나리오가 어떻게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 이면에는 30, 40대 남성의 마음을 읽어낸 전략이 있다. 딱딱하고 차가운 건축물 같은 남성의 마음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감성을 주입한 것이 적중한 것이다. 건축(기술)에 첫사랑(감성)을 융합하여 창조적인 영화로 재탄생한 것이다. ‘융합’과 ‘감성’이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의 중요성이 다시 한 번 증명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융·복합 기술이 만든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첨단기술이 인문학과 예술 등 비(非)기술적 요소와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있고, 학문과 학문 사이의 벽을 허물고 융합하는 통섭이 화두가 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우리 생활상의 변화는 전화 단말기인 하드웨어에 다양한 콘텐츠를 가진 소프트파워가 융합하여 창조한 모바일 세상의 결과다.

후발 국가들은 저임금 대량생산의 가격 경쟁력으로 우리를 위협해오고 선진국들은 저마다 새로운 융합기술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우리 기업과 정부의 연구개발(R&D) 사업도 기존 틀을 벗어나 새로운 융합을 끊임없이 시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의 IT융합산업 관련 설문조사에 의하면 설문 참여기업의 절반 이상(54.3%)이 향후 과제로 IT융합을 통한 스마트 제품 출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현재 관련 제품을 출시했거나 준비 중인 기업은 25.3%에 머물러 아직 본격적인 추진이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융합기술 활용도가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를 창출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R&D 협업이 중요하다. 기업 간 연구소의 벽을 낮추고 산업 분야별 융합을 통한 R&D생태계를 촘촘히 만들수록 그 안에서 발휘될 수 있는 창의성은 상상 못할 만큼 커진다. 에디슨이 세운 멘로파크연구소는 다양한 분야의 장인이 모여 열흘에 특허 하나씩을 발명해 내는 R&D연구소였다. 목수, 기계 수리공, 유리를 부는 사람, 전기 기사, 수학자, 도안가 등 다양한 영역의 지식이 융합하고 협업함으로써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한 것이다.

정부의 새로운 R&D 정책도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R&D 대·중소 상생 협력을 확산하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주력 기간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미래 신산업을 육성하는 ‘산업융합원천기술개발사업’ 등에 중소기업이 주관하는 비율을 높여 나가고 있다. 또 공공기관과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이나 신제품을 중소기업이 개발하도록 지원하고 개발에 성공하면 수요처가 구매해 주는 ‘구매조건부신제품개발사업’의 확대를 통해 중소기업이 도전적으로 R&D를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구소가 하나의 독립된 기관(organization)이 아니라 네트워크(network)로 연결된 유기체로 작동하여 R&D생태계 안에서 함께 경쟁력을 키우는 동반성장의 성과를 이루게 되었다.

생태계는 폐쇄적이거나 순환구조가 막히면 병들게 된다. 우리나라 R&D생태계가 산학연(産學硏)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토론하며, 새로운 분야의 아이디어를 접목시키는 기름진 토양이 되어 미래 먹거리가 되는 R&D 씨앗이 잘 여무는 내일을 기대해 본다.

이기섭 한국산업기술 평가관리원장
#기고#이기섭#건축학개론#융합#컨버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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