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안내광고는 만인이 광고주로 참여할 수 있는 소통의 아고라이다. 인터넷 검색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안내광고에서 구인이나 구직 같은 일상의 대소사를 해결해왔다. 이토록 소중하고 긴요한 안내광고는 1921년 2월 24일 ‘동아소개란 신설’이라는 동아일보 사고에서 예고되었다. “저렴한 요금 간단한 절차로 가장 유효한 신문의 이용법”이라는 내용으로 소개 종류와 행수(行數) 규정 및 요금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어 동아일보 1921년 3월 1일자로 ‘동아소개란’ 안내광고가 시작되었다. 1단 크기로 단수가 정해져 있어 내용에 따라 계속 가로 길이만 이어가면 되는 편리한 형태였다. 지금도 세로 1단, 가로 1cm가 신문광고의 기본 단위인데, 1920년 이후 이 형태가 굳어졌다. 특별 광고에는 셋집을 구한다는 구세가(求貰家)가 있고, 보통 광고에는 셋집을 놓는다는 차가(借家),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집을 산다는 매가(買家), 급사를 구한다는 구급사(求給仕)가 있다.
이후 10여 년 사이에 구직, 양도, 구혼, 부업, 서적, 사진, 발명, 하인 등 소개 종류도 여러 가지로 늘었다. 그만큼 다양한 직업이 생겨났고 이런저런 욕구가 다양하게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중에서 찬모(饌母), 유모(乳母), 식모(食母), 하인(下人) 같은 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70년대까지도 식모 구한다는 카피가 안내광고란에 종종 등장했으나 1980년대 들어서는 자취를 감췄다.
사이버 장의사, 악취 관리사, 유품 정리사, 이미지 컨설턴트,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하우스 매니저, 매장 배경음악 전문가, 도시농업 지도사 같은 유망 직업이 앞으로 안내광고란을 채울 듯하다. 황지우 시인은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월 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심인’·1983년) 같은 심인(尋人)광고를 시어로 차용해 1980년대의 암울한 시대상을 증언했다. 시란 억지로 쓰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찾는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안내광고에는 인간 군상의 애환과 시대상이 담겨 있으니, 그 흐름을 보면 한국사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엿볼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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