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해성]스리랑카 난민 살리는 ‘닭 10마리와 그물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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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6일 03시 00분


김해성 목사·지구촌사랑나눔 대표
김해성 목사·지구촌사랑나눔 대표
한겨울 버스정류장에서 추위에 떠는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을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일자리를 구해주었다. 스리랑카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공동체가 형성됐다. 그들의 요청으로 스리랑카 야당 국회의원을 초청해 대접했다. 그 분의 초대로 스리랑카를 방문하게 됐다. 2004년 쓰나미 참사 때는 긴급의료팀과 함께 구호활동을 펼쳤다. 초청했던 야당 국회의원은 국무총리가 됐고 또 대통령이 됐다. 스리랑카의 마힌다 라자팍세 대통령이다. 그 분이 선물로 준 아기 코끼리 한 쌍이 서울대공원에서 재롱을 부리며 잘 자라고 있다. 길거리의 외국인 두 명을 안아준 것뿐인데 대통령을 만나고, 코끼리 한 쌍을 선물로 받게 될 줄이야.

5월 초순, 또 스리랑카를 다녀왔다. 대통령부인께서는 내전으로 발생한 북부지역 고아들의 문제를 호소했다. 영국 식민지였던 스리랑카는 싱할리족 85%와 타밀족 15%로 구성돼 있는데 타밀족은 정부 수립과 운영 과정에서 소외됐다. 싱할리족은 불교, 타밀족은 힌두교로 종교 갈등까지 겹쳤다. 예전 대통령 후보 한 명이 타밀족의 분리 독립을 약속하고 당선됐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자 타밀족은 항의하다가 반군을 조직해 독립을 요구했다. 정부군 또한 강경 대응을 하면서 스리랑카 내전은 아시아 최장 분쟁지역이 됐다. 2009년 5월 반군이 완전히 진압되면서 26년간의 내전이 종식됐다.

고아뿐만 아니라 난민도 만나고 싶다고 대통령부인께 부탁했다. 마을을 들어서는 길목부터 초토화된 모습이 펼쳐졌다. 무너진 집, 총탄 자국과 포탄구멍이 난 담장, 불에 탄 차량과 오토바이가 내전의 잔해로 쌓여 있었다. 타밀족 난민을 만났다. 퀭한 눈빛의 여인과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들은 표정이 없었다. 이들은 내전의 포로였고 희생양이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여인이 입을 열었다. “우리 동네에는 전쟁 과부가 250명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먹고 살 게 너무 없어서 고통스럽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닭 10마리를 사주십시오. 닭이 알을 낳고 또 닭이 되면 우린 살 수 있습니다!”

이어 한 남성이 말했다. “내전 때문에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물고기들은 늙고 살이 쪘지만 그물이 없어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물 한 채를 주신다면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타밀 난민의 절박한 호소를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인에게 사정을 들려주었더니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냐고 물었다. 닭 10마리에 3만 원, 그물 한 채에 4만 원이라고 했더니 7만 원을 후원금으로 내놓았다. “10명을 더 책임지겠다”면서 그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타밀 난민 돕기가 시작되면서 시골교회 목사님들과 대학생, 중국동포들까지 후원에 참여하고 있지만 난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엔 모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

스리랑카 정부는 난민들을 책임지기엔 너무 가난하다.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들, 과부들의 절박한 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닭 10마리와 그물 한 채로 생존의 희망을 안겨주고 싶다. 고아원을 지어서 부모 잃은 슬픔을 달래주고 싶다. 학교를 지어서 희망의 미래를 열어주고 싶다. 농장과 공장을 만들어 난민들에게 희망의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싶다.

6·25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은 고아와 과부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생존의 틈바구니에서 신음했다. 영양실조와 굶주림에 죽어가던 전쟁고아와 과부들을 살린 것은 구호와 원조의 손길이었다. 타밀 난민촌에서 빚진 자의 자리에 섰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하지 않을까? 도움 받던 나라에서 도와줄 수 있는 나라로 성장했으니 나누는 나라, 나누는 국민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닭과 그물을 부탁드립니다”라며 손을 벌리고 다닌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아원과 학교, 농장과 공장을 지어주고 싶다.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겠다.

김해성 목사·지구촌사랑나눔 대표
#기고#김해성#스리랑카 난민#국제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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