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주한미군의 눈에 비친 한국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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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7일 03시 00분


허문명 국제부 차장
허문명 국제부 차장
14일자 한 조간신문은 제임스 서먼 주한미군사령관이 2015년 12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예정대로 한국군에 넘겨주더라도 한미연합사령부를 존속시키되, 사령관을 한국군이 맡는 방안을 우리 군 당국에 비공식적으로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의 소스는 한국 군 장성·장교들로 되어 있지만 한국 국방부는 즉각 부인했다.

기자는 서먼 사령관으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어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국 주재 미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사실 확인 및 서먼 사령관의 인터뷰가 가능한지 대신 물어봐 달라고 청했다. 그는 “업무 협의 미팅이 있으니 물어봐주겠다”고 했다. 며칠 뒤 그는 “기사는 명백한 오보다. 서먼 사령관이 화가 많이 나 있고 매우 난처한 처지에 있다”고 알려 왔다.

그는 “서먼 사령관은 ‘지난해 7월 부임 이후 연합사 문제를 한 번도 거론한 적이 없는데 왜 이런 기사가 나갔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적 정서를 정말 모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보도 내용은 전작권 이양이 결정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연합사의 미래와 관련해 실무진이 검토한 다양한 의견 중 하나일 뿐이며 전혀 공식적인 것이 아니다”라면서 “그동안 한미 정부 간의 전작권 이양 결정 과정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런 보도가 비상식적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이다. “알다시피 전작권 이양은 미국이 제안한 게 아니라 노 정부 때 한국이 먼저 제안한 것 아닌가. 당시 정부 관계자와 한국 내 일부 좌파는 미국이 응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라크 등 분쟁지역이 늘면서 주한미군 활용전략을 재검토하던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즉각 수용했다. 정작 이양시기 협의에 들어가자 한국 정부는 일관성을 보이지 못했다. 노 정부는 2009년을 제시했다가 준비가 안 됐다며 새 정부 출범 이후인 2012년으로 넘겼고 이명박 정부가 다시 2015년으로의 연기를 요구해 미국이 수용했다. 이런 과정들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미동맹에 관한 한국의 정책에 일관성이 있는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미국이 먼저 연합사 존속을 제안할 수 있겠는가.”

그와의 대화 이후 한국의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을 지낸 전직 군 지휘관들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전작권 이양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연합사도 존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이것은 양국 정부와 의회 차원에서 논의될 일이지 군 실무자들이 비공식적으로 논의할 사안이 절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한국 언론에 대한 쓴소리를 많이 들었다. 상대가 있는 중대한 국가적 사안의 경우 잘못된 사실로 여론을 몰아가서는 안 된다는 충고였다. 미 정부 고위 관계자가 하소연하듯 남긴 마지막 말이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런 보도들이 나오면 결과적으로 모든 책임을 미국이 져야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 한국민의 기대만 부풀리게 한 뒤 뜻대로 안 될 경우 ‘미국은 신용이 없다’ ‘미국 사람은 믿어서는 안 된다’는 실망을 줄 것 아닌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미국이 한국 내 이념 대결 같은 정치적인 일에 좌·우파 모두로부터 이용당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허문명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제임스 서먼#주한미군#한국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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