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유재동]먹구름 커진 경제 현실 대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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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9일 03시 00분


유재동 경제부 기자
유재동 경제부 기자
이제 현실을 인정할 때다. 많은 사람들은 4년 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이유로 그 심각성을 애써 무시하곤 했다. 15년 전 직접 외환위기를 겪었기에 위기라면 내성(耐性)이 생긴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이와 깊이에 있어서 이번 경제위기의 파급력은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클 것이다. 세계경제 전체는 물론이고 한국경제에 대한 충격만 놓고 봐도 그렇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유동성(liquidity)의 위기였다면 이번 위기는 지급능력(solvency)의 위기다. 굳이 비유하자면 ‘지금 당장 지갑에 돈이 없는 것’과 ‘지갑은 물론 은행계좌에도 돈이 없는 것’의 차이다.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급한 대로 구제금융을 받고 단기간에 전열을 정비해 위기를 수습할 수 있었지만 이번 유럽발(發) 위기는 그렇게 간단히 풀 수가 없다. 무엇보다 세계경제의 펀더멘털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다. 가계의 채무 위기는 일단 정부 재정으로 눌렀지만, 이젠 각국 정부가 파산할 지경이다.

앞으로도 위기는 반복될 것이다. 그동안 진통제 처방만 했을 뿐 근본적인 해결을 못 했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다. 위기 대응방안도 별로 남아있는 게 없다. 금리는 내릴 만큼 내렸고, 재정도 이미 바닥났다. 불황이라 세금을 더 걷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복지를 줄이자니 그건 더 어렵다. 긴말 할 것 없이 지금의 그리스만 봐도 안다. 돈을 찍어내 시장에 공급해도 실물로 가지 않고 다시 정부로 환수되고 있다. ‘빚 경제’의 종말을 목도한 기업들이 더는 차입과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에 맞서온 각국 중앙은행은 요즘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다.

4년 전 세계경제의 구원투수 역할을 한 중국이 이번에도 뭔가를 해줄 것이란 기대도 있다. 하지만 중국도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근로자들의 임금이 오를 만큼 올랐고 무엇보다 이 나라도 ‘디플레 수출국’이란 과거 명성에 걸맞지 않게 물가상승과 싸우고 있다. 경기부양을 마음 놓고 할 처지가 아니란 뜻이다. 브릭스(BRICs)의 또 다른 축인 인도나 브라질도 성장세가 푹 꺾였다. 일본은 벌써 세 번째 ‘잃어버린 10년’에 접어들고 있다. 세계경제를 구원할 수 있는 ‘메시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 빠른 시일 내에 위기를 해결할 ‘마법’은 찾기 힘들어 보인다. 신대륙 발견이나 산업혁명에 맞먹는 인류 역사의 엄청난 혁신이 당장 일어나면 모를까. 사실 지금 그런 해법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선진국들은 이미 미래의 소득을 흥청망청 당겨썼다. 한국 등 다른 나라도 어찌 보면 그들의 위험한 축제를 함께 즐긴 공범이다. 항상 깨닫는 진리지만 경제엔 공짜가 없다. 분에 넘치는 과소비 뒤엔 어김없이 청구서가 날아온다. 이제 우린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버는 인고(忍苦)의 시간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그게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무너졌을 때 나는 이 위기가 대충 끝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동아일보가 연재한 시리즈 제목은 ‘길고 깊은 미국발 금융위기’였다. 길고 깊은 위기…. 결코 바란 일은 아니었건만 이젠 정말 부정할 수 없는 무거운 현실이 돼 가고 있다. 당장 대선주자들이 머리 싸매고 공부해야 할, 내년에 들어설 새 정부가 가장 먼저 마주해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 넋 놓고 있다가 장기불황의 파도에 휩쓸려갈지, 위기를 기회 삼아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을지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유재동 경제부 기자 jarrett@donga.com
#글로벌 금융위기#외환위기#지급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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