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지갑, 선글라스, 시계, 액세서리 등. 이달 21일 서울본부세관이 500억 원대 짝퉁 밀수조직을 적발, 압수한 물품 2만4000점 가운데 언론에 공개한 것들이다. 범인들은 짝퉁 제품에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붙여 소개하는 카탈로그까지 만들어 제조와 유통에 활용했다니 그 대담함에 입을 다물 수 없다. 관세청은 시계 담배 인삼 고추 녹용 다섯 가지를 2005년부터 최근까지의 인기 밀수품목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삼용방(蔘茸房) 광고(동아일보 1921년 12월 13일)는 ‘위상(僞商·유사상품) 주의’라는 헤드라인 아래 다음의 보디카피를 이어간다. “근래 후중(厚重)한(두껍고 푸짐한) 종히(종이)로 포지(包紙·포장지)를 밧구고(바꾸고) 미삼(尾蔘·인삼 잔뿌리)을 혼입(混入·섞어 넣음)하야 판매하는 위상이 만슴니다(많습니다) 얼는(얼른) 생각하시기에는 싼 것 갓사오나(같사오나) 돌이어(도리어) 빗싼(비싼) 것이올시다 폐당(弊堂·저희 집)은 정중(正重·내용물 무게) 16냥(兩)에 지중(紙重·종이 무게)이 불과 78돈쭝(錢重)이오 (중략) 전량을 발매하오니 안심하시고 하명하시옵소서.”
이 광고는 지면 왼쪽에 인삼을 세워 아래쪽으로 뿌리가 길게 뻗어나가게 하고 오른쪽에 사슴이 노니는 장면을 그려 넣었다. 디자이너의 솜씨가 보통 아니다. 패키지만 요란한 유사 상표에 속지 말고 인삼녹용 전문점에서 사라는 것이 핵심 주장. 그냥 권유만 하지 않고 지금도 귀금속이나 한약재의 무게를 잴 때 쓰는 ‘돈쭝’(錢重)으로 내용물과 종이 무게를 명시함으로써 설득력을 높였다. 돈쭝은 개화기 무렵 일본에서 들어온 도량형으로, 1돈쭝은 한 냥의 10분의 1 또는 한 관의 1000분의 1이며 3.752g에 해당된다.
짝퉁의 제조 및 판매는 지식재산권을 침탈하는 행위다. 밀수품은 포장이 뜯기자마자 곧바로 짝퉁 국산품으로 바뀔 터.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짝퉁에 속아왔을까? 통관 단계부터 짝퉁을 차단하려는 세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짝퉁을 싸늘하게 외면하는 건강한 소비의식이 필요하다. 짝퉁임을 알면서도 찾는 사람들은 책임이 더 크다. 자신이 헛것에 빠져 짝퉁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은지, 냉정히 돌아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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