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19>세상의 ‘대세’를 열심히 추종해온 무기력한 아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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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볶던 아내를 말린 것까지는 괜찮았다. 말꼬리의 “그러게. 비싼 학교에는 왜 넣어가지고”가 화근이었다. 아내의 공세가 남편에게로 방향을 바꾸었다. 아내는 “애가 우리보다 나은 인생을 살지 말라는 뜻이냐”며 따지고 들더니, 결국 “아빠가 능력이 없어 서포트를 못하니까 아이도 좋은 무리에 끼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이러니까 아빠들이 아이 교육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비용이라는 뾰족한 화살로 남자의 아킬레스건인 ‘능력’을 찔러대니까. 남자는 “특별한 경험과 좋은 친구들을 만들어주려면 어느 정도의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아내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어느 정도’라는 게 월급의 절반을 넘는다.

그러면 부모의 미래는? 이건 숫제 부모라고 할 수도 없다. 아이 교육의 노예다. 당장의 교육비에 밀려 미래 준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으니. 누가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놓았단 말인가.

“그나마 우리는 애를 일찍 낳아서 다행이야. 요즘은 유모차 한 대에 200만 원씩 한다고.”

애를 재운 뒤 아내가 화해의 맥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그런 유모차가 “좋은 무리에 끼기 위해, 또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모임의 일원이 되지 못하면 각종 정보에서도 소외당한다는 것.

남자는 책에서 읽었던 ‘추종비용’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추종비용이란 소외될까봐 두려워 남들을 따라가느라 치르는 비용이라고 한다. 중산층의 미래가 그런 추종비용 때문에 더욱 암담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녀의 사교육비를 비롯해 남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허우적대느라 지는 부담이 갈수록 눈덩이다.

달갑지 않은 소식은 TV 뉴스에도 이어졌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법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소식이었다. 전통 시장은 아사 직전이라는데.

“정의가 땅에 떨어졌네. 누가 세상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

비난할 대상을 굳이 따져볼 필요가 없었다. 자동적으로 정치인들이 생각났고 다음으로는…. 그때 아내의 한마디가 껴들었다.

“왜? 좋은 뉴스잖아. 우리도 마트만 다니지, 시장은 안 가는데.”

의식 있는 지성인으로 자부해온 남자는 아내의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시장에 마지막으로 가본 게 언제더라?

세상의 ‘대세’를, 남자 또한 열심히 추종해온 것이었다. 아이 교육이 그랬고 대형마트 역시 그랬다. 그 밖에도 많을 것이다.

생각해보니까 자신의 선택이었다. 남자는 자신 또한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젠 남 탓을 줄이고, 때로는 용기를 내어 남다른 선택을 해보기로.

한상복 작가
#작가 한상복의 남자이야기#남자#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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